“다행이다”라는 말이 남긴 아픔[이재국의 우당탕탕]〈73〉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2022. 1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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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너 어른 되면 대학 등록금이 없어져서 대학교도 공짜로 다니고, 군대도 없어질 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대학 등록금은 더 비싸졌고 군대도 복무 기간만 줄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내 조카 세대에는 등록금도, 군대도 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기대였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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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너 어른 되면 대학 등록금이 없어져서 대학교도 공짜로 다니고, 군대도 없어질 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대학 등록금은 더 비싸졌고 군대도 복무 기간만 줄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내 조카 세대에는 등록금도, 군대도 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기대였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가 들고 시대가 변하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속도가 빨라졌지만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인간은 더 피곤해지고 할 일도 많아졌다.
세상이 변하면 모두가 평화롭게 잘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노숙인들은 맨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던 날 나는 이태원에 있었다. 친한 형이 핼러윈 축제에 맞춰 레스토랑을 오픈한다고 해서 오후 6시 무렵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고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과 오후 10시 무렵 우리 집으로 왔다. 집이 이태원이라 이태원 지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골목 대신 멀리 돌아서 집으로 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안 받았다가 ‘아침부터 누구야!’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고향에 있는 형이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살면서 형이 화내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아니 자느라고 안 받았지.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이태원에 난리 났잖아. 너희 가족은 괜찮은 거지?” “어. 다 자고 있는데….” “그럼 다행이고. 누나한테도 전화해봐, 누나도 전화 많이 했을 거야.”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통화가 56통이었다. 장모님, 장인어른, 큰누나, 작은누나, 처남, 선배, 후배, 친구….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이태원 참사 때문에 100명 넘게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처갓집 식구들과 누나들, 선후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의 안전을 알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모두 “다행이다”였다. 나는 “다행이다”란 말이 처음으로 무섭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다행이지만 언젠가 내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다행’이란 말이 무서웠다. 어제도 그 현장을 지나왔고 매년 핼러윈 축제 때마다 그 골목을 지나며 축제를 즐겼는데 ‘다행히’ 나만 살아남았다는 게 미안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다행이다”라는 말의 무서움과 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미래’라는 시간이 오면 모든 게 좋아지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한데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고립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상이 빨라지는 만큼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 같다. ‘다행’이면 살아남는 거고 ‘다행’이 아니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된 듯하다. 당분간, 아니 한동안 “다행이다”란 말은 나에게 아프게 남을 것 같다.
세상이 변하면 모두가 평화롭게 잘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노숙인들은 맨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던 날 나는 이태원에 있었다. 친한 형이 핼러윈 축제에 맞춰 레스토랑을 오픈한다고 해서 오후 6시 무렵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고 함께 식사를 하던 일행과 오후 10시 무렵 우리 집으로 왔다. 집이 이태원이라 이태원 지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골목 대신 멀리 돌아서 집으로 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안 받았다가 ‘아침부터 누구야!’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고향에 있는 형이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살면서 형이 화내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아니 자느라고 안 받았지. 왜 무슨 일 있어?” “지금 이태원에 난리 났잖아. 너희 가족은 괜찮은 거지?” “어. 다 자고 있는데….” “그럼 다행이고. 누나한테도 전화해봐, 누나도 전화 많이 했을 거야.” 전화를 끊고 보니 부재중 통화가 56통이었다. 장모님, 장인어른, 큰누나, 작은누나, 처남, 선배, 후배, 친구….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이태원 참사 때문에 100명 넘게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처갓집 식구들과 누나들, 선후배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의 안전을 알렸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모두 “다행이다”였다. 나는 “다행이다”란 말이 처음으로 무섭고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다행이지만 언젠가 내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다행’이란 말이 무서웠다. 어제도 그 현장을 지나왔고 매년 핼러윈 축제 때마다 그 골목을 지나며 축제를 즐겼는데 ‘다행히’ 나만 살아남았다는 게 미안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다행이다”라는 말의 무서움과 미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미래’라는 시간이 오면 모든 게 좋아지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줄 알았다. 한데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고립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세상이 빨라지는 만큼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것 같다. ‘다행’이면 살아남는 거고 ‘다행’이 아니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이 된 듯하다. 당분간, 아니 한동안 “다행이다”란 말은 나에게 아프게 남을 것 같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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