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180] 야구 중계 빛나려면

양 해원 2022. 11.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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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도 허망할 때가 있다. 사회인 야구 몰수 경기. 모처럼 맞는 휴일 낮 시간을 애써 비워놓지 않았던가. 제시간에 9명 채우지 못한 상대팀이 야속하다. 한데 선수 뒤늦게 채워 시작한 연습 경기마저 몰수. 이번에도 저쪽 하나가 다친 것이다. 가을 야구의 허기, 진짜 가을 야구로 달래지려나.

“임지열 선수의 투런 홈런이 나왔던 3회 초였습니다.” “좌중간을 완벽하게 갈랐던 김성현의 적시 2루타.” 한국시리즈 6차전 3회 초가 막 끝났을 때, 6회 말 2루타를 다시 보여줄 때, 중계 진행자가 말했다. 문제는 ‘나왔던’과 ‘갈랐던’.

‘-았(었)던’은 동작이 일어난 시점과는 상황이 다름을 풍기는 어미(語尾) 뭉치. 게다가 그리 가깝지 않은 일을 회상하듯 표현하는지라 이런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삼십 분 전에 보낸 쪽지에 답이 없는 친구한테 전화 건다 치자. “내가 아까 (보낸/보냈던) 문자 봤어?” 이때 ‘보냈던’ 하는 사람 드물지 싶다, 며칠 전이면 몰라도. 그러니 이 중계도 ‘나온’ ‘가른’ 하면 좋았을 텐데.

“송구가 빠지면서 출루가 됐고” “실책이 나오면서 변수가 발생이 됐고”…. ‘~가(이) 되다’는 ‘합의가 되다’처럼 목적어가 필요한 말에나 어울릴 수 있는 구문이다. ‘출루(出壘)’나 ‘발생’은 그런 말이 아니므로 그냥 ‘출루했고’ ‘발생했고’ 해야 옳다.

비슷한 말버릇을 흔히 본다. ‘거포가 등장을 하면서 경기장이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무실점 호투하다 지난 경기에서 부진을 했습니다.’ ‘등장하다’ 역시 목적어가 있으면 어법에 맞지 않는 자동사니까 그냥 ‘등장하자’로, 심지어 ‘부진하다’는 형용사라서 당연히 ‘부진했습니다’로 써야 한다.

경기는 어느덧 9회 초. “김광현 선수가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올라옵니다.” 투구(投球)도 범실도 ‘개(個)’로 표현하는 판이니 아웃의 수인들 어쩌랴만, 물건 세는 단위라 실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책 세 차례’ ‘90번 투구’ ‘두 아웃카운트/아웃 두 번’ 했더라면, 마침 그날 지구 그늘에 숨었다 얼굴 내민 보름달보다 환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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