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런게 진짜 ‘외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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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부터 올해 대선까지 약 1년을 더불어민주당 출입기자로 일했다. 취재하면서 접한 의원들 상당수는 자신의 발언이 언론에 어떻게 보도될지 극도로 조심스러워했다. 지지자 심기를 거슬러 ‘문자 폭탄’을 맞는 상황을 특히 경계했다. 현안에 대해 코멘트를 해놓고 두세 번씩 전화를 걸어와 확인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래도 보도된 기사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소셜미디어(SNS)에 알리바이를 적어 내려갔다. “내 뜻은 이게 아닌데 기자가, 언론이….”
민주당 대변인 김의겸 의원이 9일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EU) 대사 발언을 곡해했다가 항의를 받고 사과했다. 한국 근무 경력이 도합 6년 가까이 되는 스페인 출신 베테랑 외교관이 야당 대표와 만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두둔하고 윤석열 정부의 것은 비판했다는 소리를 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만약 언론이 민주당 의원이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보도했다면? ‘기레기’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점잖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국내 사정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에서였을까. 민주당 사람들은 외국 인사나 매체의 발언을 끌어다 자기 입맛대로 요리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지난해 6월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 소득’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옹호했느냐 아니냐가 여의도의 화두였다. 이 지사 측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MIT 교수 저서의 특정 부분만을 인용하며 언론과 당시 야당을 향해 “공부 좀 하라”고 쏘아붙였다. 하지만 바네르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라마다 다르고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지 말라.”
민주당은 올해 1월에는 미 의회 소식을 주로 다뤄 현지에서도 독자층이 제한된 잡지 ‘더힐’을 들고 나와 윤석열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했다. “미국의 유력 매체, 군사 전문가도 제2 총풍을 시도하는 윤석열 후보가 전쟁 발발 가능성을 키운다고 한다”고 홍보했다. 얼마 안 있어 더힐의 자체 보도가 아닌 한인 교수의 기고문에 근거한 것이고, 글을 쓴 교수가 “이재명 후보가 미국의 국익에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국내에서야 무얼 하든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있으니 없는 말도 지어내고 삼인성호(三人成虎)식 음모론을 끝까지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있는 외교는 다르다. ‘김의겸 사태’로 인해 앞으로 이재명 대표와 만날 외빈들은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못 믿을 사람들’이라 생각해 본국에 보고할 사진만 찍고 속 깊은 얘기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게 ‘외교 참사’ 아닌가. 언론의 정당한 인용 보도에도 매번 ‘발언 왜곡’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던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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