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부는 시민을 지킬 수 있을까

조홍민 기자 2022. 11.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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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청춘들이 쓰러졌다. 8년 전 세월호의 아픔이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생명들이 또 허망하게 삶을 마감했다. 이번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 이태원이었다. 모처럼 즐기러 나간 핼러윈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 숨이 턱 막혔다. 20대와 10대인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족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조홍민 사회에디터

“내 딸이 저기에 갔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열흘도 더 지났다. 그러나 정부가 보여준 수습 과정을 살펴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우리 곁에 국가가 있긴 한 걸까.’ 분노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른다.

참사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비극과 참사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조치에 두겠다”고 밝혔다. 찬찬히 한번 살펴보자. 대통령의 말처럼 다수의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습과 후속조치가 뒤따랐는지.

윤 대통령의 대국민 공식 사과는 없었다.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나 추모예배·법회 등에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는 했으나 공식석상에서 담화 형식의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사과의 진정성을 전하는 데 있어서는 형식도 중요할 수 있지만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사과 담화 요구를 일축했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진상규명의 출발점인데도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셈이다.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우려할 만한 인파가 아니었다’ ‘경찰 배치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며 사건 초기 책임을 미루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주무장관으로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해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등 떠밀려 한 사과였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사퇴할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농담을 던지다 논란을 불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가 일어난 시각 지방에 내려가 캠핑을 하다 잠이 들어 제때 대응하지 못했는데도 “지금 제 거취를 표명하고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은 사실 비겁한 것”이라고 했다. 뭐가 비겁한지 모르겠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꾸라는 건 후진적”이라며 인책론에 선을 그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요구를 ‘정치공세’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 인파가 몰려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건데 대통령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꼭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시민들의 문제제기는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책임 회피’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주말 밤 서울에서 그런 대규모 인명피해가 왜 일어났는지, 재난안전관리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직간접적인 원인은 무엇이고 책임 소재는 어디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지, 팔이 퉁퉁 붓도록 심폐소생술을 했던 일선 경찰과 소방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이들을 질타하란 얘기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국민의 뜻이고 둘째도 국민의 뜻입니다.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그 뜻을 잘 받들겠습니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지난 6개월 동안 한 치도 어긋남 없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섬겼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한책임을 졌다고 할 수 있을까. 정부가 보여준 작금의 행태를 지켜보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애도 모드’는 끝났다. 인사조치도 사과도 타이밍을 놓쳤다. 며칠 전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 야당 의원이 질의하는 동안 강승규 시민사회수석과 김은혜 홍보수석이 ‘웃기고 있네’라는 필담을 나누다 언론 카메라에 딱 걸렸다. 정말 웃기고 있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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