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물글씨'가 '버릴 수 없는 것'에 묻는다[정하윤의 아트차이나]<6>

오현주 2022. 11. 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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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곧 작업'인 쑹둥
물 묻힌 붓으로 돌에 '물로 쓴 일기'
허망히 사라지는 것, 덤덤히 시각화
어머니 반세기 모은 수만 가지 물건
거대 설치작품 '버릴 수 없는'에 펼쳐
버린 문짝·조명 모아 구조물 제작도
'사라짐' 대하는 작가의 철학 녹여내
국제무대에서 크게 주목받는 개념미술가인 쑹둥의 ‘버릴 수 없는’(Waste Not·2005). 2009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개인전에 출품했을 당시 설치전경이다. 쑹둥은 공연·설치·비디오·조각·회화·서예 등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를 결합하는 작업으로 가는 곳마다 파란을 일으켜왔다. 어머니가 평생 모은 잡다한 일상용품을 통째 옮겨내 자신의 가정사까지 드러낸 이 작품은 ‘쑹둥’이란 이름을 세상에 알린 대표작이 됐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2006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버릴 것 없는’이란 작품명으로, 산업화로 급변하는 중국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변크기,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
중국 그림을 보지 못한 지 한참입니다. 한국 미술시장이 자못 뜨거웠던 지난해와 올해, 세계의 작가와 작품이 우리를 기웃거리던 때도 중국은 없었습니다. 중국 ‘큰손’ 컬렉터의 규모와 수가 미국을 제쳤다는 얘기도 이미 2~3년 전입니다. ‘으레 미술은, 그림은 그런 것’이라며 반쯤 우려하고 반쯤 체념했던 한국화단을 뒤흔든, 기발한 감수성으로 뒤통수를 내리쳤던 중국 작가들이 하나둘 사라졌습니다. 예술을 예술이 아닌 잣대로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에 기대하는 희망 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정치에도 경제에도 답이 없다 생각할 때 결정적인 열쇠를 예술이 꺼내놨습니다. 오랜시간 미술사를 연구하며 특히 중국미술이 가진 그 힘을 지켜봤던 정하윤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지점 그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때마침 ‘한중 수교 30주년’입니다. 다들 움츠리고 있을 때 먼저 돌아보는 시간이고 먼저 찾아가는 길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깊고 푸른 ‘아트차이나’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정하윤 미술평론가] 스산한 늦가을이다. 꽃이 시들고, 나무가 우수수 낙엽을 떨구는 계절.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이 소멸하는 이때면 생각나는 미술가가 있다. “삶이 곧 작업”이라 말한 중국 미술가 쑹둥(宋冬·56)이다.

1966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어느덧 국제적인 작가로 우뚝 선 쑹둥. 젊은 시절 그는 ‘사라짐’을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예를 들면 ‘물로 쓴 일기’(1995∼). 작품명이 그렇듯, 이 작업에서 쑹둥은 매일 일기를 썼다. 먹이 아닌, 물만 묻힌 붓을 들고. 종이가 아닌, 돌 위에. 하지만 붓에는 물만 묻어 있기에 아무리 열심히 써도 돌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억하기 위해 쓰는 하루가 그렇게 사라진다.

1990년대 쑹둥의 작업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을 흘리며 베이징의 좁은 골목을 달리거나 골목의 흙바닥에 물 묻은 붓으로 시각을 썼다. 발이 닿는 방향으로 남겨지던 물의 선은 금세 사라졌고, 순간을 붙잡으려는 듯 써내려간 숫자도 금방 증발해버렸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는 애써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과정을 카메라로 담을 뿐.

물 묻은 붓으로 글자나 숫자를 쓰는 것은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쑹둥은 어릴 때 그 전통을 따라 붓에 물을 묻혀 한자를 쓰며 글을 배웠다. 유년의 기억은 성년의 퍼포먼스 작업이 됐다.

중국 전통 따른 유년의 기억, 퍼포먼스 작업으로 연결

1990년대 국제 미술계에서 퍼포먼스는 이미 흔한 방식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완전 새로운 것이었다. 30년 가까이 외부와 교류가 차단된 채 오직 정치적 구호를 전면에 드러낸 구상회화만이 미술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였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서양미술에 대한 정보가 한번에 쏟아져 내렸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인상주의자 클로드 모네부터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까지,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부터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부부까지. 더 자유로운 내용과 새로운 형식을 갈구하던 중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100년에 걸친 서양미술 모두를 게걸스럽게 탐식했다.

수많은 방식 중 쑹둥은 퍼포먼스를 취했다. 퍼포먼스의 미술이라면, 물 묻은 붓으로 글씨를 쓰던 유년의 행위도 예술일 수 있었던 것이다.

‘퍼포먼스’란 형식이 유년의 기억과 서구의 영향에서 비롯됐다면, ‘사라짐’이란 내용은 성년시절의 체험에 기인한다. 1990년대의 중국은 덩샤오핑의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수도 베이징의 변화는 특히나 급격했다. 쑹둥은 후통이라 불리는 베이징의 오래된 골목에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아침에 서 있던 건물이 저녁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쑹둥은 붙잡을 수 없었다. 변화의 바람은 거대했고, 그는 너무 작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덤덤하게 시각화하는 쑹둥의 작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쑹둥의 ‘물로 쓴 일기’(Water Diary·1995).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계의 강력한 주자로 꼽히는 쑹둥이 초기 시절부터 이어온 퍼포먼스. ‘사라짐’이란 주제를 위해 ‘물’을 선택해, 돌 위에 물 묻힌 붓으로 글 쓰는 과정을 기록했다. 퍼포먼스 대부분을 ‘관람객 없이’ 진행해, 행위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는 사진·영상이다. 사진, 40×60㎝,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

그런데 쑹둥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설치작품 ‘버릴 수 없는’(2005)은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인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거대한 설치작업은 방대한 양의 물건으로 구성돼 있다. 수만가지의 살림살이, 예를 들면 옷, 신발, 치약, 칫솔, 페트병, 의자, 책, 비닐봉지, 펜, 손목시계, 머리빗, 병뚜껑, 보온병, 망치 등등. 말하기도 구차한 자질구레한 일상의 잡기들이 작품의 재료이자 주제다. 하나의 종류가 수십, 아니 수백개를 이루는 것도 있다. 모두 낡고 오래된 것이다. 신발만 해도 할머니의 것부터 조카의 것까지 아우른다.

한 사람이 모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양이지만, 이 모두는 쑹둥의 어머니가 직접 모아 오랜 시간 간직해온 물건이다. 엄마와 아들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어머니가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던, 어떤 것도 사라지게 놔두지 못한 이유는 뭘까.

쑹둥의 어머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 시대 여느 가정처럼 마오의 시절에 급격히 쇠락했다. 남편마저 반동분자로 몰려 ‘재교육’을 받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고, 오래도록 가족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가난을 배웠다. 배급품은 늘 부족했고, 식구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정부가 약속했던 풍요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부족하니 아껴야 했다. 다신 갖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무것도 버려서는 안 됐다. 아껴야 잘 산다는 자린고비 정신도 아니고, 추억의 물건을 간직하겠다는 낭만도 아니다. 절박한 상황이 개발한 처절한 생존전략이다.

‘아무것도 못버린다’는 처절한 생존전략, 거대 설치로

어머니의 강박은 중국의 수장이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계속됐다. 여전히 무엇도 버릴 수 없었고, 물건은 반세기에 걸쳐 켜켜이 쌓여 갔다. 그 물건들이 작품이 된 것은 2002년, 쑹둥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급작스레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절망에 빠졌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남겨진 물건들 속에 홀로 파묻혀 있었다. 쑹둥은 어머니를 슬픔에서 건져 올리고자 집안의 물건 일부를 정리했다. 어머니가 산뜻하게 새출발하기를 바라는 효심에서였지만, 그녀는 극도로 화를 냈다. 쑹둥은 ‘어떤 것도 버릴 수 없다!’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그녀가 모은 물건들을 가지고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쑹둥과 어머니는 일일이 셀 수도 없는 물건들을 종류별로 나누고, 상자에 담아 옮기고, 전시장에서 다시 배치하는 과정을 함께 했고, 아들은 이 작업에 ‘버릴 수 없는’이란 제목을 붙였다. 주어는 생략돼 있지만 관람자는 안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버릴 수 없던 쑹둥의 어머니, 나아가 무엇도 버릴 수 없던 그녀의 세대라는 것을.

쑹둥은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전시에서 “걱정마세요 아버지, 저희는 잘 있어요”란 문장을 벽면에 적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문장이지만, 곁에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떠나보내지 못하던 어머니는 2009년에 세상을 떠났고, 쑹둥은 이제 작품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한다. 증발해버린 물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둥의 ‘같은 침대 다른 꿈 No.3’(2018). 중국 도시개발사업 때 철거된 개별 가옥에 있던, 실제 가정에서 사용한 문짝·창문·조명 등을 모아 제작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가치 없는 것’을 재조명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쑹둥의 작품세계가 구조물로 섰다. 철·나무창·문·침대·거울·조명·일상잡기·도자기·채색유리, 254.5×224.5×361㎝, ⓒ쑹둥·페이스갤러리 제공.

요즘 쑹둥은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 견고한 작품을 만든다(‘같은 침대 다른 꿈 No.3’ 2018). 베이징의 재개발로 철거돼 버려지는 문짝이나 창문·조명 등을 모아 크고 작은 조각 또는 구조물을 만드는 거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저 바라만 보던 청년 쑹둥이 아무것도 사라지지 못하도록 몸부림치는 어머니와의 작업을 거쳐 고안한 작품이다. 사라져버리는 것을 붙잡는 그만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젊은 시절의 그보다는 적극적이고, 어머니보다는 자유스럽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물은 증발하고, 꽃은 시들고, 잎은 떨어진다. 영원한 재물이나 명예도 없다. 관계는 변하며, 숨도 언젠가는 사그라진다. 이 모든 사라짐을 대하는 당신은 어떠한가. 1990년대의 쑹둥처럼 무기력한가, 아니면 그의 어머니처럼 강박적인가. 다 사라져 버린다고 체념하자니 삶이 허무하고, 사라지지 못하도록 발버둥치자니 인생이 딱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이 가을에 쑹둥의 작품이, 떨어지는 낙엽이 묻는다.

△정하윤 미술평론가는…

1983년 생. 그림은 ‘그리기’보단 ‘보기’였다. 붓으로 길을 내기보단 붓이 간 길을 보고 싶었단 얘기다. 예술고를 다니던 시절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푹 빠지면서다.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작가는 일찌감치 접고,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친김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관심은 한국현대미술이었다. 하지만 그 깊이를 보려면 아시아란 큰물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그 꼭대기에 있는 중국을 파고들어야겠다 했던 거다. 귀국한 이후 미술사 연구와 논문이 주요 ‘작품’이 됐지만 목표는 따로 있다. 미술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란 걸 알리는 일이다.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교양 강의를 하며 ‘사는 일에 재미를 주고 도움까지 되는 미술이야기’로 학계와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려 한다. 저서도 그 한 방향이다. ‘꽃피는 미술관’(2022), ‘여자의 미술관’(2021), ‘커튼콜 한국 현대미술’(2019),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2018) 등을 펴냈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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