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국방부 "헤르손 철군 시작"…우크라 사태 9개월 만에 분기점 (종합)

김정률 기자 최서윤 기자 2022. 11. 1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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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보급선 문제로 전략 요충지 헤르손서 철군…우크라 12개 마을 탈환
미국, 나토 등 국제사회 일단 '환영' 입장 속 평화협상 계기 기대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정률 최서윤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점령했던 전략적 요충지 남부 헤르손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헤르손을 '죽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한 상황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에 따르면 전날 헤르손 철수 계획을 밝힌 러시아군은 이날 "군 부대가 승인된 계획에 따라 드니프로 강 좌안에 진지를 준비하기 위해 기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 최고사령관인 발레리 잘루즈니 대장은 SNS를 통해 러시아가 실제 철수하고 있는지 아직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24시간 동안 7㎞를 전진해 12개 마을을 탈환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은 계획에 따라 계속해서 공격 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헤르손 바로 위에 맞붙은 미콜라이우주의 남부 소도시 스니후리우카를 수복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국영TV는 수십 명의 스니후리우카 주민의 환영을 받는 우크라이나군 모습을 방영했다. 영상에서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등장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빠져나가면서 도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하일 포돌야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전날 러시아가 헤르손을 죽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전날 연설에서 "우리 작전의 모든 세부 사항을 적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쪽이든 동쪽이든 상관없이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우크라이나군이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며 "이것이 우리가 헤르손과 카호프카, 도네츠크 및 기타 도시를 해방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 (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 81주년을 기념하는 야외 박물관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헤르손은 개전 초기인 지난 3월 러시아군이 처음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이다. 이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 헤르손을 비롯한 점령지 4곳을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만약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을 탈환 한다면 푸틴의 병합 주장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9개월째 접어든 시점에서 이번 철수 명령은 남부 전선의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분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러시아 전략적 요충지인 헤르손을 포기한 것은 보급 활동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러시아군은 지난달 헤르손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기도 했다.

러시아의 이번 결정 배경에는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드니프로강 주변과 러시아 병참선을 집중적으로 타격한 것으로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미군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9개월째로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 10만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숨지거나 부상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전황과 관련, "(우크라이나는) 협상할 기회가 있고 평화가 이뤄질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 전략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겠다는 의지로 볼 순 없기에, 러시아군이 철수한 시기를 노려 적절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러군의 퇴각이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가 내년 봄에 대비해 전력을 보강하고 병력을 늘리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철수시킨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편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헤르손에서 철수 지시를 내린 데 대해, 러시아의 매파 성향 군사 블로거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러시아 군사 분석가인 보리스 로진은 헤르손 철수가 "1991년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패배"라고 표현했다. 그는 "겨울 공세 동안 주요 도시를 점령하거나 진격하지 않는다면 일련의 군사적 좌절이 훨씬 더 큰 내부 불만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군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내부 의견도 존재했다. 러시아 미디어 RT의 편집자인 마르가리타 시모니안은 트위터를 통해 이번 철수 결정이 러시아군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한 올바른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헤르손 철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철군 발표 관련 "우리가 알고 있던 판단을 내리는 데 (러시아가)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소한 겨울 동안 모든 당사자가 자신의 입장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타협할 준비가 돼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회담 전망을 묻는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도 "러시아가 헤르손에서 철수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협상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신임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과 가진 자리에서 러시아의 헤르손 철군 발표와 관련해 "앞으로 며칠 내 러시아가 드니프로 강 서안에서 정말 철수하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백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헤르손을 떠난다면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승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r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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