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트러스, 윤희근, 제갈량의 책임

유태영 2022. 11. 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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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가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 섰다.

취임 44일 만에 사임을 알리는 자리였다.

그날 경찰의 우선순위를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시위 관리와 마약·성범죄 단속에 두었던 것은 현장인가 지휘부인가.

기동대 지원을 요청하고, 안전이 우려된다는 정보 보고를 올리고, 인파와 소음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사람이 죽고 있어요. 앞으로 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던 것은 다름 아닌 일선 경찰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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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가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 앞에 섰다. 취임 44일 만에 사임을 알리는 자리였다. 연 450억파운드(약 73조원) 규모 감세안을 고집해 영국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킨 것이 가장 큰 낙마 이유였다.

201개 단어, 12개 문장으로 구성된 사임의 변은 1분30초 만에 끝났다. 에너지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경제·안보 위기를 헤쳐나갈 권한을 부여받았으나, 이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이니 물러나겠다는 요지였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것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영국 언론은 ‘퉁명스러운’ ‘기이한’ 사임 연설이라고 평했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열흘쯤 뒤 우리나라 치안 총수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었다. 재난 컨트롤타워를 이끄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다”라는 말로 국민 속을 뒤집어놓은 뒤였던 터라 윤희근 경찰청장의 말에 이목이 쏠렸다.

윤 청장은 “안타까움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유가족에게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며 “무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추상적이고 유보적인 표현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빠졌으니 용서를 구할 일도 없었다.

반대로 일선 책임을 따지는 말은 구체적이고 단호했다. 그는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 대응은 미흡했다”며 통상의 프로토콜을 벗어난 ‘특별 기구’의 ‘강도 높은 수사와 감찰’을 약속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각오”까지 언급했다. 아무리 아끼는 사람이라도 과오가 있으면 엄정히 처벌해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가 깃든 고사성어다. 초점은 일선의 과오에 맞춰져 있었다. 재무장관을 경질하는 선에서 감세안 후폭풍을 모면하려 했던 트러스 전 총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였다.

그날 바로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 내용은 세간의 관심과 분노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의 회견을 곱씹어 볼수록 의문은 커졌다. 제갈량이 마속에게 그랬던 것처럼 본인을 비롯한 지휘부는 현장에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냈던가. 그날 경찰의 우선순위를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시위 관리와 마약·성범죄 단속에 두었던 것은 현장인가 지휘부인가.

기동대 지원을 요청하고, 안전이 우려된다는 정보 보고를 올리고, 인파와 소음으로 가득 찬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사람이 죽고 있어요. 앞으로 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던 것은 다름 아닌 일선 경찰관이었다.

그러니 석 달 전 행안부 내 경찰국 설치를 비호하며 취임한 윤 청장이 윗선까지 책임 소재가 가지 못하도록 미리 방탄막을 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정사(正史) 삼국지는 읍참마속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제갈량은 … 마속을 죽이고 병사에게 사죄했다. 상소를 올려 ‘… 그 책임은 모두 신(臣)이 사람을 부당하게 쓴 데 있습니다 … 청컨대 저 스스로 직위를 세 등급 강등시켜 그 책임을 지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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