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제패 신진서 9단 “난 아직 진행 중…멈추지 않겠다”
우승 뒤 든 마음은 ‘다행과 기쁨’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기에
결승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는
최정 사범의 말 듣고 깊은 감명
나도 우승 개수 정하지 않을 것
한국 바둑의 1인자 계보는 조남철 대국수를 시작으로 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두말이 필요 없는 신진서 9단(22)의 시대다. 2020년 1월 1위에 오른 뒤 그 자리를 지켜온 지도 어느덧 35개월이 됐다.
신 9단은 지난 8일 끝난 제2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최정 9단을 꺾고 ‘미완의 고지’로 남겨둔 대회에서 첫 정상에 올랐다. LG배, 춘란배에 이어 세계 메이저대회 3연속 우승이자, 통산 4번째 세계대회 우승이다.
우승 다음날인 9일 한국기원에서 만난 신 9단은 “이번 대회는 꼭 우승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삼성화재배를 앞두고 대국이 많이 없어서 감각이 떨어질 것 같아 국가대표팀 코치님들을 귀찮게 하면서까지 많은 연습대국을 부탁했다”며 “우승하고 난 뒤에는 다행인 마음, 그리고 기쁜 마음의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쁨과 함께 다행이라는 감정을 느낀 것은 그가 지난 2년간 삼성화재배에서 겪어왔던 일들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신 9단은 2020년 처음으로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중국 최강자 커제 9단. 온라인으로 진행된 결승 제1국에서 신 9단은 팽팽한 접전을 펼치다 마우스 클릭 실수로 인한 착점 오류로 허무하게 패했다. 그리고 2국마저 내주며 준우승에 그쳤다. 지난해 그는 다시 결승에 올라 우승에 도전했는데, 박정환 9단을 만나 1국을 잡고도 2~3국을 내리 패하며 다시 한번 좌절했다. 신 9단은 “그동안 성적을 내온 것에 비하면 이상하게 삼성화재배에서만 부진했다. 운도 잘 따르지 않았고, 나도 부족했다”며 “이번에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우승하지 못하면 ‘앞으로 삼성화재배 우승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느꼈던 압박감을 토로했다.
이번 대회에는 부담을 느낄 요소가 또 있었다. 최 9단이 결승에 올라오면서 바둑사에 유례없는, 세계 메이저대회 결승 최초 남녀 간 성(性)대결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강자인 신 9단에 비해 최 9단이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신 9단은 최 9단과의 대국 자체는 큰 압박감이 없었다고 했다.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최 9단의 기력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 9단은 “최정 사범의 경험과 기세가 무섭게 다가왔다. 괜히 초일류 기사들을 꺾은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진다 해도 개인적으로 큰일이 나거나 그러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정 사범과 대국한다는 것보다, 앞선 2년간의 기억 때문에 결승 자체에 대한 부담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이력에 삼성화재배 우승을 추가하면서 그의 1인자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신 9단은 “지금 당장을 놓고 보면 나도 1인자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난 아직 현재 진행 중이고 더 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멈추면 후대의 1인자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이창호 사범님, 이세돌 사범님이 우승을 매번 하는 게 아니었어도 1인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오랫동안 꾸준했기 때문이다. 나도 앞으로 최소 2~3년은 지금의 기세를 더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화재배 결승이 끝난 후 최 9단과 함께한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최 9단의 말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최 9단이 한 말은 “결승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한계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였다. 신 9단은 “최정 사범의 그 말을 듣고 많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앞으로 세계대회 우승) 개수는 정해두지 않으려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계 바둑계를 향한 신 9단의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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