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크름반도 길목 헤르손 철수…파상공세 우크라 “단정 일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점령해 왔던 남부 도시 헤르손에서 철수하고 방어선을 새로 구축한다고 밝혔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파상공세에 전력이 약화된 결과로 해석된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9일(현지시간) 헤르손에서 철수하고 드니프로 강 동쪽 건너편에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군에 명령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지역 합동군 총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TV로 방송된 논평을 통해 “더는 헤르손시에 보급 활동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헤르손 철수는 이번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헤르손은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크름반도와 동부 친러 반군 세력 집결지인 돈바스 지역을 잇는 전략 요충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채 한 달도 안 돼 헤르손을 점령했다. 지난달 5일에는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주와 함께 헤르손주 등 4개 지역을 자국 영토에 최종 병합시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 탈환작전을 본격화한 지 두 달 만에 헤르손 철수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달 러시아 점령지 약 500㎢를 수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하르키우와 리만 등 점령지를 잇따라 우크라이나군에 내주며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규모 공세에 친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19일 헤르손시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우크라이나군이 드니프로강 주변 일대 다리와 러시아 병참선을 집중 공격한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0월에는 우크라이나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크름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크름대교마저 끊겼다. 영국 국방부는 빨라도 내년 9월에야 크름대교의 정상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했다.
미국 국방부는 현재까지 러시아가 주력 탱크의 절반가량을 잃은 것으로 추산했다. 네덜란드의 전쟁 연구단체 오릭스에 따르면 최신식 탱크 T-90을 포함해 최소 1450대의 탱크가 파괴되거나 우크라이나군 손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탱크 부족에 옛 소련 시절 주력 탱크인 T-62까지 전장에 동원하고 있다.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 8일 “주력 탱크 손실로 러시아군의 80%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밝혔다.
병력 손실도 커서 러시아군이 전쟁 초기 때만큼의 전투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국방부는 지난 8개월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병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10년 동안 발생한 사상자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국방부는 앞서 지난 8월 러시아군 사상자 수를 8만명이라고 밝힌 이후 추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헤르손을 다시 우크라이나에 내준다면 전세는 급격히 우크라이나 쪽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된다. 친러 반군 세력이 버티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을 통한 보급은 물론 담수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름반도가 러시아로 병합되기 전 크름반도를 고립시키기 위해 헤르손에 댐을 지어 북크름 운하를 막았다. 이 조치로 크름반도로 가는 담수가 85%까지 줄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군의 철군 발표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로이터에 “일부 러시아군이 헤르손주에 주둔하고 있어 철수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철수한다고 위장한 뒤 매복 작전을 펼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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