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로 야외무대 철거에 “민주광장의 기능 지켜야”[현장에서]
‘28 아트스퀘어’ 조성 예정
지난 8일 대구 중구 동성로 옛 대구백화점 앞. 이곳에는 보름 전쯤까지만 해도 조명·음향장치 등이 설치된 약 6m의 높이의 단상이 있었지만, 이날 땅이 파헤쳐진 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단상이 있던 공간을 중심으로 어른 키만 한 높이의 철제 펜스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었다.
펜스로 막혀 있지 않은 한쪽에는 10여개의 빨간색 안전고깔(라바콘)과 비닐띠가 둘러쳐져 시민의 출입을 막았다. 공사 현장에는 벽돌과 전선, 나무판자 등이 흩어져 있었다. 인근에 붙은 펼침막에는 ‘야외무대 재정비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 박경철씨(35)는 “모임 때문에 모처럼 동성로에 나왔는데 무대가 있던 자리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어서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면서 “여기서 공연도 하고 집회도 많이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무대가) 사라지게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은 물론 집회나 시위 등이 주로 이뤄지던 동성로 야외무대를 없애는 방향으로 재정비가 추진되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존처럼 다양한 문화·정치적 의사 표현 등이 가능한 방향으로 정비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 중구청은 동성로 축제가 끝난 지난달 24일부터 야외무대 재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2009년 5월 조성된 동성로 무대는 오래되고 낡아 최근 매년 1000만원이 넘는 유지·보수비가 들어가는 등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중구청은 대구시로부터 받은 특별교부금 9억원을 들여 이달 말까지 높은 단상을 철거하고 열린 형태의 공간인 ‘동성로 28 아트스퀘어’를 조성할 예정이다. 기존 단상이 있던 자리에는 사각 및 원형 기둥 3개를 세우고, 이곳에 LED 조명을 비춰 미술품 등의 영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는 24일 제막식이 예정돼 있다.
시민단체 “집회 대표 공간”
“시민 의견 반영” 목소리도
이에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른바 ‘민주광장’의 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권운동연대 등 대구인권단체모임은 지난 3일 “이곳은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를 요구한 수많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이뤄지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며 “민주화 이후에도 시민단체들의 각종 집회와 캠페인 등이 개최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실제 이곳에서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문제 고발 등을 목적으로 한 집회·시위나 각종 공연·축제 등이 이뤄져 왔다.
인권단체모임은 “일부 상인들의 상업적 이해 중심으로 이뤄지는 야외무대 재정비 사업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듣고 사업이 진행되는 게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중구청은 교수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 평가위원회를 거친 끝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단상을 없애는 등의 형태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정비로 집회 등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자체의 판단이다.
중구 관계자는 “무대가 집회 목적으로 더 많이 활용되다 보니 시끄럽다는 이유 등으로 인근 상인들의 불만이 많긴 했다”면서 “(이 사업이) 코로나19와 백화점 영업 중지 등으로 침체된 동성로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고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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