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배제’ 대통령실,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
여당·시민단체 고발 수사 중
“사실상 경찰에 방향 제시해”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해외 순방에서 MBC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시키지 않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보도 가이드라인’을 넘어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수사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꼭 집어 MBC 배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MBC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전용기 탑승 배제 방침을 밝히면서 “MBC는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대역임을 고지하지 않은 왜곡·편파 방송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어떠한 시정조치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MBC가 지난 9월 미국 방문 때 윤 대통령이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고 자막을 달아 내보낸 영상을 주된 배제 사유로 든 것이다.
비속어 논란 이후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의원들은 검찰에 박성제 MBC 사장과 기자 등을 고발했다. 이들은 MBC가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정보통신망법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MBC에 대한 무고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들은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고발인 조사를 마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MBC를 저격해 사실상 수사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수사의 주요 대상자이기도 하다.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를 따지려면 윤 대통령이 말한 게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확인해야 한다. 설령 ‘날리면’이 맞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하지 못하는 반의사불벌죄라 윤 대통령이 처벌불원서를 내느냐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진다. 여당이나 시민단체가 대통령 대신 고발한 뒤 처벌하는 행태는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 대통령의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 사업을 “이권 카르텔 비리”로 규정하고 사법처리 가능성을 언급했다.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의혹에 대해서는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우리 헌법에 따라 한국 국민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수사 지시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리·박하얀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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