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현장 불법증축 난립…‘돈 되는 골목’에 벌금 물면서 버틴다[왜 또 참사인가]
인근 건물 14곳 중 6곳 위반
1곳은 무허가 건출물 증축
임대료·이윤·소유권 얽혀
시정조치에도 철거 안하고
안전 정비 못해 계속 좁아져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가 커진 요인 중 하나로 일대 골목에 늘어선 건물의 무단증축이 꼽힌다. 분위기 있는 테라스와 화려한 간판, 이색적인 건물 외관은 이태원으로 발길을 끌어당기는 특색이지만 13만 인파가 몰린 지난달 29일엔 걸림돌이 됐다. 무단으로 증축된 시설물이 거리를 좁혀 병목현상이 더 심해졌고, 참사 당시 대피로를 막아 인명 피해를 키웠다.
불법건축물이 골목 경계를 침범하기까지 당국이 손 놓고 바라본 건 아니다. 구청은 무단증축 건물에 시정을 명령하고 이행강제금을 물렸다. 그런데도 이태원 같은 장소에는 불법건축물이 판친다. 활성화된 상권인 데다 땅값이 뛰면 임대료 수익도 덩달아 올라 벌금으로 때우더라도 증축을 택하는 게 ‘남는 장사’다. 여기에 복잡하게 얽힌 구도심의 지분관계까지 더해져 골목을 안전하게 정비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임대료와 이윤, 소유권 같은 현실적 문제들 앞에서 ‘안전’은 후순위로 밀리기 쉽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태원 같은 장소는) 이익을 위해 증축하면서 도로 공간이 계속 좁아지는 문제가 반복되는 상황”이라면서 “불법과 적법의 경계에서 균형점을 찾으며 유지되어오다 문제가 누적돼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야금야금 좁아졌다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한 좁은 골목이 세계음식문화거리와 맞닿은 지점에는 해밀톤호텔 본관과 별관이 마주보고 있다. 참사 당일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은 사고가 난 골목을 향해 가는 이 인도에서부터 인파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도로를 가운데 두고 본관·별관이 각각 무단증축을 한 데다 별관 주점이 당일 임시 부스까지 설치해 사람이 오가는 통행로의 너비를 좁혔다.
건축물 대장을 보면 해밀톤호텔 본관은 세계음식문화거리 도로변 쪽 주점 테라스를 불법으로 증축했다. 2011년 창틀(새시)을 세우고 테이블을 놓은 게 시작이었다. 현재는 경량철골과 유리로 된 면적 17.4㎡짜리 테라스를 세워둔 상태다. 별관은 1층에 31㎡를 경량철골과 투명 플라스틱 패널 등으로 불법증축했다가 2013년 적발됐다. 2017년엔 증축 면적이 51㎡로 늘어났다.
이 거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면, 별관은 외벽을 덧대는 등 바깥쪽으로 확장하며 무단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시간이 지날수록 본관과 별관 사이 거리 폭은 조금씩 좁아졌다. 참사 당일 설치된 별관 앞 임시부스까지 고려하면 일부 거리 폭은 약 5m에서 3m까지 줄어들었다. 구청은 2013년부터 시정명령을 내린 뒤 이행강제금을 부과했지만, 해밀톤호텔은 9년간 5억원이 넘는 금액을 내면서 시정조치 없이 영업을 지속해왔다.
이태원 일대 골목에서 무단으로 면적을 늘려 영업하는 곳은 해밀톤호텔만이 아니다. 사고가 난 골목과 그 골목에 T자 형태로 접한 거리에 늘어선 건물 14곳 중 6곳이 무단증축됐다. 나머지 8개 건물 중 1곳은 무허가 건물이고, 4곳은 과거 무단증축한 이력이 있다. 구청에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 다시 증축하기를 반복한 사례도 있다.
■돈이 되는 땅, 벌금 내고도 버틴다
안전을 위협하는 불법건축물이 난립하는 이유는 상가 입장에선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무단증축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무단증축으로 벌어들이는 임대료 상승분·만족도 대비 철거할 때 드는 비용 등을 저울질하면 이행강제금을 내고 버티는 게 ‘돈 되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이행강제금이 무겁다고 하면 시정 조치를 따르겠지만, 생각만큼 무겁지 않으니 ‘장사하면서 세금 낸다’ 생각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태원이 오랜 기간 ‘흥행 상권’이었다는 점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해밀톤호텔 본관 뒤로 이어지는 세계음식문화거리 쪽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만 해도 이태원 일대 권리금이 가장 높은 ‘상권의 중심지’로 꼽혔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 2~3년 동안 공실이 늘기는 했지만 이태원에서 가장 먼저 회복세를 보인 상권도 이 지역이다.
무단증축이 이뤄질 유인은 차고 넘치지만 지자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마땅치 않다. 용산구 관계자는 “시정될 때까지 계속 부과하는 이행강제금이 현재로선 가장 강도 높은 제재 조치”라고 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건축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강제 철거에 나서기 어렵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고발 조치를 택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용산구는 불법건축물을 방치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나서야 해밀톤호텔 건축물 5곳에 대해 건축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호텔 주변에 불법구조물을 세운 혐의(건축법·도로법 위반)로 해밀톤호텔 대표이사를 입건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과 교수는 “이태원 골목은 폭이 일정치 않은 구도심인 데다 축제 당시 모였을 외지인들은 불법구조물에 익숙지 않은 경향이 있어 위험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무단증축 건축물이 버틸 수 있는 현행 수준 이행강제금 체계를 개선하는 등 인파가 몰리는 지역의 안전을 확보할 행정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좁은 비탈길, 쪼개진 수많은 소유권
사고가 난 골목의 경우 정비를 거쳐 통행 여건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좁고 비탈진 구도심 특유의 골목길 형태가 사고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지분관계를 해소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 대대적인 재정비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쪽과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잇는 이 골목은 길이 10m 정도의 좁은 비탈길이다. 해밀톤호텔에서 설치한 폭 70㎝의 분홍색 가벽이 골목을 따라 이어져 있어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좁아진다. 가벽은 에어컨 실외기와 환기 시설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차폐시설로 2017년쯤 만들어졌는데, 지붕이 없어 단속대상은 아니다. 가벽 때문에 골목은 폭이 4m에서 3.2m로 좁아졌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폭이 4m 이상이어야 하는데, 여기에 못 미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태원 음식문화거리를 대상으로 2013년 보행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했지만, 사고가 난 골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비사업은 해밀톤호텔 뒤편 전신주와 통신줄 지중화, 도로포장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골목길 개조 같은 대대적인 개선 작업은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땅의 복잡하게 얽힌 소유 관계도 서울시나 용산구가 손을 대기 어려운 요인이다. 이 골목은 약 48평(160.7㎡)짜리 좁은 도로이지만 34명이 지분을 나눠서 갖고 있다. 서울시와 해밀톤호텔도 지분이 있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니 도로 확장 등을 위한 기부채납과 토지매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이태원은 이 골목을 비롯해 좁은 도로 투성이인 데다 상업·주거용 건물이 혼재돼 있고 소유권도 쪼개져 있다”며 “구청이나 시에서 정비하려 해도 사유재산이 걸려 있어 소유관계를 정리하는 일부터 쉬운 작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부채납으로 일부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재원과 예산에는 항상 한계가 있다”며 “결국은 전반적인 도시 재정비가 필요한 일인데 대다수 정비 사업은 기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현 이행강제금체계 강화해
도로 ‘통행 흐름 조절’ 필요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도로 정비보다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제대로 마련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진유 교수는 “이번 사고는 도로 용량에 맞는 수준의 보행자가 통행하도록 통제를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에 가깝다”며 “건물의 용도와 도로가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을 고려해 도시계획을 짜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는 이태원에서 났지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홍대 부근이나 연남동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갑자기 사람이 많이 몰리는 상황에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게 하고, 어떻게 경찰과 소통할지 계획을 세워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희진·김나연·김송이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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