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보스턴 마라톤 영웅 함기용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고 전운이 감돌던 1950년 4월 19일, 태평양 건너 미국 보스턴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세계 4대 마라톤 대회 중 하나로 꼽히는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한국 선수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나란히 1~3위를 휩쓸었다는 소식이었다.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서윤복이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는 한국 선수가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었다.
만 열아홉 나이에 한국 스포츠의 전설로 남은 함기용 선생이 9일 92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마라톤 인생은 손기정 선생과 밀접하게 얽혀있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생 시절인 1946년 손기정 선생이 주도한 ‘마라톤 꿈나무 발굴단’에 뽑혀 마라토너의 길을 걸었고, 1947년 ‘제1회 손기정 세계 제패 기념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5위를 차지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당시 한국 대표팀의 코치도 손기정 선생이었다. 고인은 2012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손기정 선배가 우리를 위해 직접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이며 뒷바라지해줬다”고 말했다.
함기용 선생은 보스턴 대회 당시 양정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으로, 마라톤 풀코스(42.195㎞)를 네 번밖에 뛰어보지 않은 신예 중에 신예였다. 그는 초반 20㎞까지는 50위권 밖으로 쳐져있었으나 무서운 페이스로 25㎞ 구간에서는 선두에 올랐다. 하지만 보스턴 마라톤의 유명한 32㎞ 지점인 ‘상심의 언덕(Heartbreak Hill)’에 다다라서는 지친 기색을 보이며 걷다가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는 경기 도중 3번이나 걷고도 우승한 그에게 ‘워킹 챔피언(Walking Champio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반도는 남북이 갈라져 있어 이북 동포들은 내가 우승한 사실도 모른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참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세계 정상에 올랐으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보스턴 마라톤 이전 1948년 런던올림픽에 ‘예비 선수’로 뽑혀 영국 땅을 밟았으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을 앞두고는 척추 신경이 마비되는 부상을 당해 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보스턴 마라톤 제패 두 달 후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선수 생활도 길지 않았다. 부산으로 피란한 고인은 생계를 위해 1951년 조선식산은행에 취업했다. 이후 대구지점으로 옮겨 대구에 피란해 있던 고려대 상학과에 진학했다.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마라톤 훈련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훈련 여건이 열악했고 척추 부상으로 선수의 길을 접어야 했다. 잠시 공무원 생활도 했던 그는 1985년 은행 업계에서 퇴직한 이후 대한육상연맹 전무이사와 고문 등을 맡았다. 2019년엔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고인의 빈소는 분당차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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