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주년 창간기획] "전통적인 보수·진보의 가치 기준이 바뀌고 있다"
물 증발하듯 지지층 사라지면 강성 지지층만 남아 악순환 중도층 겨냥 새 전략 내놔야
지역정치 선이 굵지 못하고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생각 이제는 큰 밥그릇 싸움 가야
여의도 정가에서 대표적인 젊은 논객으로 꼽히는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선 전통적인 보수·진보의 가치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통적인 기준에선 '진보'는 인권을 더 앞세우고 '보수'는 공동체의 가치나 통제를 상대적으로 조금 더 중시한다. 하지만 민주화 세대에 대한 염증이 팽배해지고, 20-30대 젊은 보수층이 두터워지면서 진보진영에서도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졌고, 보수진영에선 개인주의적 경향이 두터워졌다.
윤 실장은 "가치기준이 변화되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전통적인 성향에 따라 특정사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안 및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보혁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주요 정당에선 당내 다수가 지지하거나 동의하는 사안이라 해도, 소수일지언정 반론이 있으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에 더해 우리 정치현실이 주권자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극한의 대립구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 실장은 '소금물 이론'에 빗대 그 원인을 설명했다. 그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승리한 당 전당대회를 예시로 들며 "소금물에서 물(중도층)이 날아가버리면 소금(강성 지지층) 비율이 높아져 물을 부어야 되는데 소금을 더 부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지율이 낮아지면 강성 지지층에게만 소구력을 보이려는 경향이 생기는데, 향후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강성 지지층 위주로 투표그룹이 구성된다면 중도층은 더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권여당이든, 민주당이든 중도층을 겨냥한 새로운 전략을 내놓지 못하면 강성 지지층만 결집하고 중도층이 이탈하는 악순환이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정치분야에선 시정연설 보이콧부터 민주당 당사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쟁의 소재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아가 '이태원 참사'와 '북한 도발' 등 사회 및 안보이슈도 정치권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실정이다. 윤 실장은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안 좋은 일이지만,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순기능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정파적인 대립이 격화되고, 천안함이나 세월호 사건 때처럼 정치적으로 갈라져 갈등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정치인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치적 계산을 안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 정치적 계산이라는 게 결국 민심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그리고 국민 신뢰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해 계산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윤 실장은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와 관련, 갈등과 고통을 긍정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정치권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인데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이 제일 큰 것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라고 지적했다. 집안에서도 가장의 책임이 가장 크듯 대통령과 여당이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질책이다.
윤 실장은 지역 정치에 있어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점으로 소지역이기주의를 꼽았다.
그는 "지역 정치가 선이 굵지 못하고 점점 작아진다는 생각이 든다"며 "대전·세종·충남·충북의 협치 방안인 메가시티문제는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이 선도모델로 될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한 게 좀 아쉬운 측면이 크긴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아이디어였으나 박형준 부산시장이 받아들이고 울산의 송철호 시장도 받아들였다. 정파는 다르지만 상호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정지역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와 점차 변질됐고, 결국 경남과 울산의 입장번복으로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윤 실장은 "지역 언론도 많이 보는 편인데, 특정 현안에 대해 어느 지역이 이기고 어느 지역이 뺏겼다는 기사가 많고, 상대 지역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느낌도 적쟎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시민들의 생활 권역은 점점 넓어지는 부분도 있는 것이고, 충청을 예로 들면 대전·세종·충남은 사실상 한 권역으로 보여지는데, 이 것은 대전일이고, 다른 것은 충남의 일로 갈라치는 것은 주민들의 생활 인식과도 맞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아가 모든 지방정부가 국토균형발전차원에서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전국 광역지자체를 해체시키고 70개 권역으로 만들자는 안이 나왔는데, 여야 모두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라며 "정치인들은 당연히 자기 밥그릇 뺏기니까 안된다고 하는데, 무작정 변화를 싫어하는 시민들까지 가세하면서 정쟁거리가 되니까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밥그릇 싸움도 큰 밥그릇 싸움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지역의 현안을 보면 식탁 위에 김치가 왜 너한테 가깝냐, 그러면 멸치볶음은 나에게 가까이 가져오라는 거의 이런 식이 되는 느낌이다 보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대담=백승목 서울취재본부 차장, 정리=석지연 서울취재본부 기자
◇ 윤태곤 실장은 누구
윤태곤 실장은 부산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하며 정치를 '주업'으로 삼아 여러 정당과 당시 청와대를 취재했다. 기자 생활을 마치고 안철수 캠프에서 대선, 서울시장 선거 등에 참모로 참여했고 국회에서도 일한 전력이 있다. 현재는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에서 공공전략과 정치 캠페인을 컨설팅하고 여러 방송과 매체를 통해서 한국 정치를 분석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정치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하며 정치와 경제 등 시사평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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