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 뜬다며? 한번 해볼까?' 전략은 틀렸다
“얼마 전에 카카오 장애 사태가 있었다. 당시에 크게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뉴스 서비스도 약간의 장애를 겪었다. 만약 이 장애를 겪는 시점이 이태원 참사 같은 사태와 겹쳐져 있었다면 언론사들,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봐야 하는 수용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우리 언론의 포털 종속성이 갖는 위험성을 꼬집으며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한발 더 나아가 이번에 화재로 인한 데이터 장애가 발생한 곳이 카카오가 아닌 네이버였다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포털로 뉴스를 보고, 언론사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뉴스를 보는 이용자는 10명 중 1명이 채 안 되는 현실에선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언론사들이 최근 1~2년 사이 ‘탈(脫) 포털’을 화두로 삼는 배경엔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10일 ‘2022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탈포털을 준비하는 언론사들의 전략’을 주제로 강의한 이성규 대표도 “플랫폼과의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상황까지 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전면 탈포털’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정의”라며 “‘부분적’ ‘전면적’이란 두 키워드를 함께 인식하면서 탈포털 전략에 접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술부터 수익까지 전부 포털 의존, 운명조차 헌납
플랫폼 종속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미권의 촉망받던 글로벌 뉴스 스타트업 업워시(Upworthy)와 믹(Mic)은 페이스북의 정책 변경에 따라 매각되거나 사실상 문을 닫았다. 네이버와 언론사가 설립한 조인트벤처들은 네이버의 주제판 서비스 종료 이후 일부 폐업 절차를 밟고 있거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플랫폼 종속 정도에 따라 언론사가 받을 충격은 최악의 경우 문을 닫는 상황까지도 간다”고 말했다.
언론이 이토록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건 “인프라 포획”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인프라 종속성은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우리 언론은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힘을 키우기보다 포털 등 플랫폼에 의존하는 길을 택해 왔다. 뉴스를 생산하는 CMS부터 유통, 뉴스 소비를 모니터링하는 애널리틱스까지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술과 소프트웨어들을 활용해왔다. 이 대표는 “포털이나 플랫폼의 뉴스 프로덕트는 그들의 정책 변경에 따라 언제든 바뀌거나 사라질 수 있다”며 “종속되다 보면 자신들의 운명조차 그들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말했다.
포털 종속은 아젠다 종속, 기술 종속, 수익 종속의 층위로 이뤄진다. 포털의 CMS를 이용하니 소프트웨어를 생산할 필요가 없게 되고, 심지어 포털이 제공하는 데이터 분석에 따라 ‘이런 기사가 훨씬 더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판단도 하게 된다. “결국, 플랫폼이 주는 기술 데이터에 의해서 우리(언론사)의 아젠다까지도 생산하는 과정들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굳이 우리 회사의 비전을 위해 뭘 하는 것보다 포털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비전이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오히려 뉴스룸 내에서는 존중받는 선택으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생살여탈권을 포털에 종속시키는 모델로 갈수록 빠져나오기 훨씬 더 힘들어진다”며 “탈 플랫폼 경제로 가기 위해선 중간에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감소시키거나 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번에 탈포털 하는 전략이 가장 어리석다”
이 대표는 네 가지 접근법을 제안했다. 먼저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한번 해볼까?’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말 것. 그는 “플랫폼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수익을 기대하는 대신 수익을 중심으로 계획을 먼저 세우고 이 기반에서 어떤 플랫폼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뉴스레터 유행하네? 해볼까? 수익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이런 식의 접근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렇게 접근하는 순간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 시도를 중단하거나 그 플랫폼에 의존해서 그 플랫폼 수익만 가져오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될 거란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고 했다.
두 번째, ‘전환의 공백’ 시기를 활용할 것. 전환의 공백이란 새로운 콘텐츠 유형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지배적 기술이 만들어지거나, 혹은 새로운 경제 흐름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발생하는 공백들이다. 예컨대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이 뜨면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흔들리고 네이버와 카카오가 따라가는 지금의 형국이다. 이 대표는 “그때 바로 수용자의 파편화가 일어나고 수용자를 재합산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우후죽순 성장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레거시 플랫폼이 힘을 덜 발휘하는 시점이 온다”면서 “그때 치고 들어가면 확률이 높다”고 했다.
진단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대표는 “한 번에 탈포털하는 전략이 가장 어리석다”고 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콘텐츠 제휴냐 검색 제휴냐 등 제휴 강도에 따라 종속의 정도가 다르므로 네이버에서 빠졌을 때 수익 등 충격의 여파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어떤 층위에서 빠졌을 때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정도가 준비되면 어느 정도에서 빠지는 게 좋을지 내부에서 조사해두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탈포털’과 ‘신규 수익모델 수립’ 전략은 반드시 병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 대표는 “신규 수익모델을 만들고 거기에 따른 새로운 프로덕트를 론칭을 시킨 뒤 그 수익모델이 확장되는 시점에 가장 최소 피해 규모가 되는 층위부터 플랫폼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때 실제로 피해 규모가 최소화될 수 있고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할까에 대한 전략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서 “탈포털만 생각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간과하는 한 아무것도 성과를 못 내고 훨씬 더 종속의 정도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포털을 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포털을 영리하게 이용할 전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된다”며 “적이라는 도덕적, 규범적인 단어들을 내려놓고 훨씬 더 영리하게 포털과의 협상이나 관계 설정을 해나갈 때 탈포털 전략이 성공적인 방식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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