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방 동행취재 불허 파문···‘자의적’ 판단에 따른 취재 제한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를 해외 순방 전용기 동행취재에서 배제하면서 언론통제 논란에 불을 당겼다. 윤 대통령은 10일 “해외순방에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MBC가 국익을 해치는 보도를 해 전용기 탑승을 불허한다는취지다. 윤 대통령은 최고 국정운영 책임자의 핵심 공적 활동 취재를 국익에 대한자의적 판단으로 제한한 사례를 남기게 됐다. 언론자유 침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가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하면서 수차례 ‘국익’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많은 국민들의 세금을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그것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기자 여러분께도 외교·안보 이슈에 대해 취재 편의,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여러 차례 MBC에 가짜뉴스, 허위보도 문제제기를 했다”며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국익을 또다시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가짜뉴스’ ‘국익훼손’으로 못박은 MBC 보도는 지난 9월 미국 뉴욕 방문 당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다. MBC는 당시 풀(공동취재) 취재 기사를 가장 먼저 기사화하면서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냐”라는 자막을 달았다. 당시 대부분 언론이 유사한 발언으로 보도했지만 대통령실은 MBC의 최초 보도와 자막 처리, 미국 의회 반응 취재 등을 문제 삼아 문제를 제기해왔다.
비속어 발언의 진위 여부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야당의 사과 요구를 일축했지만 이후에도 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심의 과정에서 이 문제가 산발적으로 나왔다. 여기에 대통령실의 이례적 취재 제한 조치가 더해져 비속어 논란은 언론자유 침해 논란으로 덩치를 키워 장기화하게 됐다. 윤 대통령이 큰 틀의 유감 표명 등을 통한 비속어 논란의 종결보다 확전을 택하면서 정치적 논쟁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익’에 부합하는 보도인지에 대한 대통령실 판단을 취재 기회 부여의 기준으로 삼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언론의 보도 방향이 정부와 맞지 않을 경우 유사한 취재 제한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비판했다고이런 조치를 취한 게 아니다. 대통령실은 얼마든지 언론 비판을 듣고 수용할 자세가 돼 있다”면서 “문제는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이례적인 취재 제한 조치로 윤 대통령은 또다시 ‘논란의 순방길’에 오르게 됐다. 첫 순방이었던 지난 6월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 때는 순방 직후 민간인 동행 논란이 불거지며 지지율이 하락했다. 두 번째 순방인 지난 9월 영국·미국·캐나다 방문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불발 논란, 한·미 정상간 ‘48초 환담’ 논란, 비속어 논란 등이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그 때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려 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외교 성과는 뒤로 묻혔다. 순방 논란을 두고 진영으로 쪼개진 분열상이 극대화하며 협치 공간이 닫히는 일도 반복됐다.
이번에는 출국 전부터 논란이 확산하며 순방 기간 내내 언론자유 침해 논란의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첫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순방의 의미와 외교적 평가보다 논란이 도드라질 경우 국정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극히 이례적인 전용기 탑승 불허가 ‘취재 제한’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취재 편의를 일부 제공하지 않는 것이지 취재 제한은 전혀 아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기자 여러분께도 외교·안보 이슈에 대해 취재 편의,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한 것도 비슷한 취지로 풀이된다. 순방 취재 과정에 비춰보면 취재 제한은 불가피한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전용기 내에서 이뤄지는 대통령과 순방 동행 기자들간의 기내 간담회 취재 기회에서 원천 배제된다. 국가·도시간 이동이 잦고, 각종 일정이 촘촘하게 짜인 점을 고려하면 민항기를 이용할 경우 취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언론의 순방 동행 취재를 ‘취재 편의’ 제공 차원으로 해석한 점은 협소한 언론관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이날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게 옳으냐는 고민 속에 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적 인물인 대통령의 외교 활동이 투명하게 전달되고 감시 받아야 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동행 취재를 ‘취재 편의’ 차원으로 좁혀 인식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용기는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전용기 이용료와 숙식, 프레스룸 비용 등 동행 취재 비용 일체는 언론사가 각자 부담한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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