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학교 공간의 작은 변화, '공감 교실' 만든다
[EBS 뉴스]
이혜정 앵커
세상을 연결하는 뉴스, 뉴스브릿지입니다.
여러분은 '학교'라고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우리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이 공간이 달라진다면, 아이들은 또 어떻게 변화할까요?
책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의 공동 저자이자, 서울대 부설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이진아 선생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먼저, 책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이 나왔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선생님들은 이런 책을 왜 쓰셨을까, 궁금합니다.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네.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이라는 책은 서울대학교 부설학교 선생님들 17명이 학교 공간에 대한 실천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엮은 책입니다.
이 연구는 연구 과정에서 초중고 선생님들이 한 모둠이 되어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연구를 진행한 것이 특별했는데요.
사실 초중고 선생님이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거든요.
같은 주제나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는 연속성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이런 연구가 무척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저는 올해도 부설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실천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혜정 앵커
선생님, 처음부터 왜 공간이었을까요?
학교 공간, 교실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앵커님은 30년 전의 아이들과 요즘의 아이들이 비슷하다고 느끼시나요?
이혜정 앵커
너무 다르죠.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네, 맞아요. 너무나 다르죠.
하지만 30년 전의 교실과 지금의 교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꿈같은 학교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건축 전문가도 아니고, 꿈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고민하다가 연구 주제가 '삶이 깃든 공간 연구'라는 것을 깨닫고 '공간'에서 '삶'으로 눈을 돌렸어요.
소박하게, 내 공간부터 변화시켜보자, 작게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교실을 보니 비어있는 공간들이 보였고, 그 빈 곳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까? 하는 설렘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혜정 앵커
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교실의 빈 공간들, 어떻게 채우셨을지 궁금해집니다.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초등학교 1학년 교실 한쪽 면에 놓은 대형 화이트보드, 이게 제가 생각한 교실 공간의 변화였어요.
요즘은 교실에서 화이트보드 대신 전자칠판을 사용하고 있거든요.
학교 창고에 있던 대형화이트보드를 가져가 놓았죠.
그리고 아이들과 저를 합한 25개의 칸을 만들어서 거기에 그림도 그리고 자기의 마음도 표현하게 했어요.
화이트보드의 이름은 "내 마음이 보이니?"라고 지었어요.
내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는 공감 활동을 시작했죠.
이혜정 앵커
"내 마음이 보이니?",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공간이네요.
뭔가 이런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러한 기대도 있으셨겠죠?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제가 기대했던 건 "서로를 공감하는 따뜻한 우리 교실"이었어요.
작년 1학년 아이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이었어요.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니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 감정을 나누는 것이 서툴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친해지기도 좀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사회성 부족을 걱정하는 학부모님도 많으셨죠.
혼자 노는 게 익숙해진 아이들을 보면서 '혼자 하던 걸 같이 하게 해보자.'라고 생각했죠.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참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걸 키워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고들 하셨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북미나 유럽에서는 학교에서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그 결과 학교폭력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저는 이 활동을 통해 공감 교실, 따뜻한 교실을 만들고 싶었어요.
<내 마음이 보이니?> 화이트보드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학교 공간의 변화로 '공감 교실' 만들어간다.
그래서, 이걸 본 아이들 반응은 어땠나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 폭발적이었어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다른 것, 신기한 것을 무척 좋아해요.
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 반에 뭔가 신기한 게 생겼다는 걸 좋아했고, 틈이 날 때마다 화이트보드 앞에 모여들었죠.
그림도 그리고, '받아쓰기가 떨린다. 짝에게 미안하다. 엄마께 혼나서 속상하다. 신난다.' 이렇게 내 마음을 표현했고, 친구에게 다가가서 "친구야, 왜 속상해?"하면서 공감해줬어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저를 공감 친구로 뽑은 아이가 저에게 와서 "선생님,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 하면서 말을 걸어요.
"행복하지." 하고 대답하면 "선생님이 행복해서 저도 행복해요." 이렇게 말하고, 또 한 아이는 "선생님, 오늘 검사할 게 엄청 많네요. 많이 힘드시겠어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이런 말도 하는데 저도 1학년 아이들의 말에 위로를 받더라구요.
이혜정 앵커
너무 예쁩니다. 사실 표현도 자꾸 해봐야 느는 거죠.
아이들의 감정 표현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굉장히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네, 작년에 했던 이 연구가 아이들, 학부모님, 교사인 저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어요.
그래서 올해 담임을 맡은 5학년 교실에서도 '내 마음이 보이니?'를 하고 있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고학년 아이들이기에 처음엔 감정 표현을 쑥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일상처럼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다가옵니다.
아침에 교실에 오자마자 공감 친구를 뽑는데, '오늘은 누가 나의 공감 친구일까?' 하는 설렘으로 시작을 해요.
공감 친구가 되면 서로 손바닥을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날 하루는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갖고 말도 걸어요, 외톨이인 친구가 없겠죠.
선생님과 공감 친구가 된 아이들은 그날의 주인공이 된 듯이 좋아해요.
그리고 우리 반에는 얼마 전에 아이들과 함께 의논하고 새롭게 만든 '우정 의자'도 있는데요.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의자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가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혹시 안 좋았던 감정이 있다면 이야기를 하면서 푸는 곳이에요.
한쪽 벽에 의자 두 개를 놓았을 뿐인데 서로 먼저 앉으려고 하고, 의자의 인기가 아주 대단합니다.
이 의자 두 개가 앞으로 우리 반의 분위기를 또 어떻게 변화시켜줄지 기대가 됩니다.
이혜정 앵커
선생님들이 보통 5학년 담임이 제일 힘들다고들 말씀하시는데, 그런 교실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학교나 교실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최근에 와서야 이 학교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학교 공간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정말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학교, 교실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공간일 거예요.
이 공간은 아이들에게는 '쉼'이고 '삶'이고 '작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이 가장 좋은 공간이 아닐까요?
제가 이 연구를 하면서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고작 이거 하나 바꿨을 뿐인데….' 라는 말이었어요.
고작 '대형 화이트보드, 의자 두 개'지만 이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공간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혜정 앵커
내년에도 이 공간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떤 연구가 될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네, 2년 동안 이 활동을 하면서 '아, 나를 알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가 있잖아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꽃이 되는 것이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에 대한 연구를 좀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어서 서울대 사범대의 연구 교사가 되었고, 이 연구를 체계화해서 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계속 좋은 연구로 학교 현장에 도움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 학교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는데요.
5학년 담임으로 걱정하고 고민 많으신 선생님들께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이진아 교사 /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공동저자
제가 연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진정한 변화는 '공간'이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변화'였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내 마음이 공간을 바꾸고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꿈꾸는 소박한 움직임, 이런 작은 연구와 실천들이 현장에서 많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혜정 앵커
공간연구가, 공간의 변화가 공감을 이어지는 그런 교실을 기대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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