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수록 서로에 상처… ‘고슴도치’ 모녀의 민낯
속옷 조차 독립 못한 엄마와 딸
함께 하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폭력·원망으로 점철된 삶 고찰
화합 아닌 홀로서기 결말 ‘신선’
신예배우 임지호 등 흡입력 압권
첫 장면부터 팽팽했던 긴장감은 금세 폭발하고 만다. 지독한 다툼 끝에 차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던 이정을 수경의 차가 들이받은 것. 곪아있던 두 사람의 상처는 터져버리고 만다. 수경은 차량의 급발진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정이 사고의 고의성을 주장하며 법적 공방까지 불거진다. 관객들은 큰 충격파를 전달받지만, 감독은 이 사건을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다룬다. 대신 두 사람의 해묵은 감정과 관계를 다루는 데 집중한다.
“네 팔뚝, 허벅지살 다 네 건 줄 알지? 빨아먹을 거 다 빨아먹고 욕먹는 건 입에 쓰다고 뱉어? 너 진짜 의리 없어.” “나도 엄마도 이렇게 사는 거, 다 엄마 때문이잖아.” 두 사람 사이 거듭되는 비난과 원망, 그 밑바닥에는 자기혐오가 짙게 드리워있다. 긴 세월 삶의 공해가 독소처럼 쌓인 엄마는 딸에게 이를 쏟아내고, 감정의 찌꺼기를 뒤집어쓴 딸은 텅 빈 마음에 분노를 채워 넣는다. 감독은 통념적 모녀가 아닌 이들을 옳고 그름의 판단 단두대에 세우는 대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감독은 이처럼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모녀 관계를 통해 인간관계 자체에 대한 집요한 고찰을 담아내면서 작품에 보편성을 더했다. 예리한 시선은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았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호평받았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우디네극동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도 초청돼 해외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극을 이끌어나가는 배우들의 흡입력도 대단하다.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신예 임지호는 심사를 맡은 엄정화 배우로부터 “천천히 움직이며 켜켜이 쌓아가는 감정선은 관객들을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남선우 프로그래머는 양말복에 대해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는 딸일 뿐’이라는 엘레나 페란테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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