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봉화광산에서 배운 것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주간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뒤져 경북 봉화에서 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된 광부들을 구조하는 과정을 읽었다. <경향신문> 기사는 시간 순서대로 읽고, <한겨레> 기사는 역순으로 읽었다. 10월26일 발생한 매몰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이태원 참사 이후에는 아마 봉화에서 인명구조가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을 반성하며 읽었다. 광부 두명이 모두 구조되는 해피엔딩을 미리 알고 읽었지만,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가슴을 졸였고 감동도 받았다. 물론 답답하고 화나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감동이 더 컸다. 2010년 칠레에서 광산이 붕괴하여 고립된 광부 33명이 69일 만에 구조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부러워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무엇보다 나는 봉화광산의 구조대가 어떤 지식과 어떤 기술을 써서 광부들을 구했는지 알고 싶었다. 지하 190m 지점에서 작업하다가 갱도 안으로 토사가 쏟아져서 고립된 사람을 221시간 만에 구하려면 무엇을 잘해야 했는지 궁금했다. 광부들이 일하고 있던 제1수직갱도가 토사로 막혔을 때 이미 폐쇄 상태였던 제2수직갱도를 이용해 사고 지점에 접근하는 방법은 누구에게 물어야 했을까. 몇명씩 조를 짜서 몇시간씩 암석을 뚫고 내려가면 될 거라고 누가 판단했을까. 경험 많은 베테랑 광부는 갱도에 갇혔을 때 어디로 이동해서 어떻게 버티고 있으리라고 추측했을까. 갱도에 고립된 사람을 구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잘 아는 사람이 다행히도 그 현장에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비록 해피엔딩이라도 그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고립된 광부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음식과 약품을 전달할 관을 뚫는 시추기는 사고 직후 충분히 투입되지 않았다. 10월31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현장을 방문한 뒤에야, 그러니까 힘 있는 분이 관심을 보여주신 다음에야 시추기가 두대에서 다섯대로 늘었다. 11월2일에는 또 일곱대가 늘었다. 그러는 동안 1차와 2차 시추작업은 실패했다. 열심히 뚫고 내려갔지만 광부들이 대피한 지점과 만나지 못했다. 작성한 지 오래돼 정확하지 않은 도면을 근거로 초기 시추작업을 했다는 어이없는 설명이 나왔다. 최선의 지식을 동원해도 어려운 일을 낡은 정보를 가지고 시도했던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까지 참여했고 미국 공영방송에서 현장에 촬영팀을 보내 과학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던 2010년 칠레 광부 구조 사례처럼 복잡한 과학지식과 엔지니어링 역량이 봉화광산에서도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봉화의 구조대도 매몰된 광부들에게 이르는 길을 막고 있는 암석이 화강암인지 석회암인지 따져야 했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 작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해야 했다. 좁은 관으로 내시경 카메라와 음향탐지기를 넣어 광부들의 생사를 확인하려 시도했고,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진입로를 발견하는 대로 작업계획을 수정해나갔다. 지하에 갇힌 광부들도 오래 쌓인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또 대피 매뉴얼을 따라 생존 환경을 만들어냈다. 막장에 있던 톱을 써서 기둥을 만들고 비닐을 둘러 텐트를 쳤다. 산소용접기를 써서 불을 피우고 커피를 끓여 마셨다. 머리와 몸으로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기술이 동원됐고 그것이 광부들을 살렸다.
물론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보면 안전관리 실패와 신고 지연 등 여러 잘못이 드러날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갱도로 쏟아진 토사 시료를 채취해서 분석하는 등 과학을 통해 사고 현장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광부 두명을 구조하는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복기해본 것은 우리에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이미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질학(암석 파쇄), 기계공학(시추기), 토목공학(갱도 구조), 전자공학(음향탐지기), 영양학(커피믹스), 의학(생존 조건) 같은 것을 공부해서 지하 깊은 곳의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먹고 힘을 합하면, 우리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면, 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책임 있게 판단하고 행동하면, 우리는 사람이 죽는 것을 미리 막을 수도 있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이 뻔한 사실을 봉화의 광산에서 감동하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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