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술을 하라고 협박함?

한겨레 2022. 11. 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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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학, 시각, 공연분야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불규칙적인' '비정규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앵테르미탕'은 공인받은 예술가들이 불규칙한 고용시간 속에서도 규칙적인 노동급여를 받도록 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제도다.

작품활동으로 풍족한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내가 본 예술가들은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작품활동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해할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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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게티이미지뱅크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얼마 전 문학, 시각, 공연분야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모처럼 다른 분야 창작자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였는데 어쩌다 보니 각자의 수입 활동과 생활고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소설을 쓰는 나는 큰 비용 없이 창작을 이어 나갈 수 있지만 시각, 공연분야 창작자들의 사정은 달랐다. 창작지원 제도가 있지만 그 또한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고, 지원을 받게 되더라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는 거의 측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사비를 더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제도 ‘앵테르미탕’처럼 예술인 기본소득 보장이 답”이라고 했다. ‘불규칙적인’ ‘비정규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앵테르미탕’은 공인받은 예술가들이 불규칙한 고용시간 속에서도 규칙적인 노동급여를 받도록 하는,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프랑스의 예술인 복지제도다. 그런 정책을 시행하려면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엄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가령 ‘10년 이상 몇개 이상 꾸준한 작품 발표’와 같은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것이 과연 한국에서 현실화할 수 있을까에 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케이(K)-콘텐츠, 케이-컬쳐, 문화강국, 콘텐츠 강국이니 하지만, 우리나라의 예술가에 대한 인식 수준을 봐서는 안될 일이라고 자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작품활동으로 풍족한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만, 내가 본 예술가들은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 작품활동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해할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왜냐하면 그조차도 너무나 이루기 힘든 꿈같은 일이니까. 11년 전 처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이십대 중반이던 나는 생활고로 힘든 일을 겪었다는 예술인 뉴스를 인용하며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에 관해 고민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고 다른 그 무엇보다도 창작자로서 계속 생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예술, 예술가, 예술인’과 같은 표현들이 똑같이 밥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인이라는 뉘앙스를 지워버리는 것일까? 나는 동료들에게 예술가라기보단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창작 노동자’라고 말하자고 주장한다.

‘누칼협’이라는 밈이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준말이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글에 ‘누가 자영업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 주식의 손실이 커서 힘들다는 한탄의 글에 ‘누가 주식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함?’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누가 그 사람 많은 데 가라고 칼 들고 협박함?’ 같은 조롱의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밈이 생성되고 유행하기 전부터 나는 이런 시선에 익숙했다. 그건 대체로 예체능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었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누가 예산이 많이 들고 십년 넘게 해도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영화 하라고 했어? 누가 요즘 읽는 사람도 적은 소설 같은 걸 쓰라고 했어?’

누가 칼 들고 협박했느냐는 말에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깔려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선택으로 진정한 노력을 해 본 뒤에도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어린아이의 조롱 같은 그런 밈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진득이 들여다보고 타인에게 공감하려 노력하기보다 자신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양 남의 불행을 조롱하며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버젓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가는 인격적인 성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조롱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삶을 다른 시선으로 이끌어 줄 예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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