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시장 신뢰 얻으려면 더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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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시장 경색의 여파가 대기업까지 번지고 있다.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았던 대기업들도 자금 사정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대기업의 자금난은 은행대출 증가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경기부진으로 돈이 잘 돌지 않는 가운데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자금시장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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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채권 신뢰도 급 추락
대기업의 자금난은 은행대출 증가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의 기업 원화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원으로 한달 새 13조7000억원 불어났다. 2020년 5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이다. 회사채 시장이 위축돼 기업들은 은행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다른 지표 하나는 기업어음(CP)이다. 지난 9일 CP 91일물 금리는 전날보다 0.04%p 오른 연 5.02%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15일 이후 13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경기부진으로 돈이 잘 돌지 않는 가운데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자금시장에 불을 질렀다. 강원도의 실책과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금융위원회는 뒤늦게 50조원을 시장에 풀겠다고 했지만 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진 뒤였다. 한번 충격을 받은 시장이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건설회사를 비롯한 중소·중견기업들의 사정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자금경색은 도미노처럼 산업계 전반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CP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격차(스프레드) 확대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9일 기준으로 CP 금리는 CD 금리(3.97%)보다 105bp(1bp=0.01%p) 높았다. 2020년 4월 9일 이후 최대 격차다. CP와 CD 금리 격차 확대는 기업의 신용위험이 은행보다 커졌고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금융당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주요 은행들을 유동성 공급에 동원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0개 주요 은행장들과 만나 CP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흥국생명의 5억달러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에 대한 대응은 시기를 놓쳤다. 결국은 정부의 주선으로 상환 연기를 철회했지만 한번의 실기로 한국 채권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채권의 부도 위험을 알려주는 지표인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말보다 3배나 올랐다.
금융시장은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신용경색에 금세 영향을 미친다. 대기업들은 그래도 자생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중소기업은 바로 부도에 직면한다. 대기업도 투자 철회와 연기 등으로 방어적 태도를 취한다. 경기가 회복됐을 때 성장을 위한 발판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정부의 대책은 선제적이며 과단성이 있어야 효과를 본다. 호미로 막을 일을 둑이 터진 뒤의 뒷북 대응으로는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대처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야 시장의 신뢰가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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