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리스트 김주환의 10번째 노래 비평 '냇 킹 콜 트리오'[김성대의 음악노트]
대중음악에서 스탠더드란 후세 음악가들을 통해 다루어져야 하거나 다뤄질 법한, 또는 이미 쉴 새 없이 다뤄져 온 '표준'을 뜻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의 대상이란 면에서 그것은 클래식과 같고, 만만한 대중성 면에서 스탠더드는 말 그대로 다수를 위한 음악, 팝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겸 프로듀서 김주환은 자신의 재해석 목록에 올려둔 그런 스탠더드를 꾸준히 음반으로 발표해왔다. 11년 전 로즈메리 클루니로 시작한 그의 빅피처는 리처드 로저스와 콜 포터&해롤드 알렌 송북을 지나 영화 음악, 나아가 자신이 좋아했던 팝 뮤직에까지 뻗었다. 그것은 한 재즈 뮤지션의 스윙에 대한 헌정, 재즈 팝 또는 재즈와 팝을 향한 경의, 사랑이었고 스스로의 음악적 복습이자 보컬 연구자로서 써낸 목소리 논문, 노래의 비평이었다.
그런 그가 열 번째 앨범에서 선택한 주제는 냇 킹 콜이다. 정확히는 냇 킹 콜과 그의 트리오(Nat King Cole Trio)다. 단, 냇의 지문 같은 올타임 레퍼토리 대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냇 킹 콜을 조명하기로 김주환은 마음먹었다. 얘기인즉슨 김주환은 이번 앨범에서 드럼과 'Unforgettable'이 없는 냇 킹 콜, 그러니까 자신이 20대 후반 그리고 2020년 즈음 즐겨 들은 1940년대 중반~50년대 초반까지 냇 킹 콜을(상큼 발랄한 첫 곡 'Frim Fram Sauce'가 정확히 1945년에 녹음한 곡이다) 불러보겠다는 의지다. 앨범 제목은 'Candy'. 수록된 노래 제목이기도 한 그것은 단어 자체가 머금은 달콤함을 넘어 노랫말에도 등장하는 댄디(Dandy)함까지 머금은, 냇 킹 콜 트리오 음악을 묘사하는 단 하나 어휘다.
냇 킹 콜 트리오 하면 고급스러운 턱시도와 교양 있는 대화로 예열된 살롱이 떠오른다. 거기에 적당한 취기, 여유로운 미소,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날리는 점잖은 윙크 정도가 가미되면 이제 음악이 흐를 준비를 마치는 식이다. 냇 킹 콜의 노래는 애절한 발라드 'For All We Know'와 완강한 베이스를 피아노가 부드럽게 설득하는 'When I Grow Too Old To Dream' 마냥 나에겐 늘 다정한 달빛, 쓸쓸한 햇살 같은 음악이다. 'Sweet Lorraine'의 가사를 빌리자면 "여름 하늘보다 더 밝은" 선명도가 거기엔 있다. 유리알처럼 굴러가는 피아노, 베이스와 기타가 마련한 스타일리시 그루브. 냇 킹 콜은 재즈를 모르고 재즈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재즈의 본질을, 장르의 내막을 쉽고 즐거운 팝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이었다.
김주환은 그런 냇 킹 콜과 그의 트리오를 맞아 믹싱과 마스터링을 포함한 사운드 디자인만 몇 달에 걸쳐 했다. 여섯 차례 지우고 다시 부른 보컬 녹음은 앨범의 전체 어레인지를 맡은 준 스미스(기타)와 피아니스트 강재훈, 베이시스트 박진교의 외유내강형 백업에 힘입어 작전처럼 진행됐고, 그런 사운드 세공에 대한 김주환의 집착은 결국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소리의 미장센으로 확장됐다. '집착'이란 말에 오해할 수 있는데 소리, 노래를 향한 김주환의 완벽주의와 강박은 저 단어가 가진 부정의 뉘앙스와는 무관하다. 그것은 그저 노력의 다른 이름이요, 노력 끝 성취의 동의어일 뿐 다른 뜻은 사족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겠다. 앨범 'Candy'는 똑같이 불러야 가치를 갖는 '히든싱어'보단 원곡의 가치를 존중하며 다른 편곡을 지향하는 '복면가왕' 쪽에 좀 더 가깝다고. 원곡보다 느린 템포로 원곡보다 긴 호흡을 전주에 새긴 'Too Marvelous For Words'가 대표하듯 그런 김주환의 세심한 프로듀싱엔 때문에 사랑스러운 스릴로 한가득이다. 마치 흑백 영화의 거친 화질을 4K 해상도로 즐기는 기분이랄까.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예정했던 봄 대신 이 좋은 만추에 발매한 건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우연인지. 냇 킹 콜과 재즈는 발아하는 봄보단 익어가는 가을에 훨씬 더 어울리지 않는가.
평론가로서 나는 한때 많이 듣는 것에 집착했다. 싫든 좋든 장르 구분 없이 일단 들어두면 나중에 어떻게든 써먹을 때가 올 거라며, 듣는 양이 글의 질을 담보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니었다. 글의 질은 감상의 넓이보단 그것의 깊이에서 나왔다. 천 가지 발차기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연마한 사람이 더 무서웠다는 이소룡의 말처럼, 나 역시 100장의 음반을 듣는 것보다 한 음반을 100번 들을 때 내가 원하는 퀄리티의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10년에 10장. 그럼에도 아직 멀었다는 듯 향후 스탠더드 400곡 이상을 더 녹음하고 싶다는 김주환은 거의 여생을 이 일에 바치려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런 김주환과 나는 어쩌면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의 말마따나 "죽은 자의 불멸의 위원회로부터 심사를 받는 예술가의 모든 행위"를, 즉 김주환은 흘러간 주옥같은 스탠더드를, 나는 과거 단순 감상에만 그쳤던 뻔하지만 평생 곁에 둘 명반/명인들을 추적하고 이해해 비평하는 것이다. 그는 노래로 나는 글로. 냇 킹 콜은 이번에 그 둘을 만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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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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