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유행과 유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꾸준히 선호하는 반려견 품종은 몰티즈, 푸들, 시추, 포메라니안 등이 있다. 그밖에는 3~5년에 한 번씩 유행을 타고 새 견종이 등장한다. 그러니 몇 년 뒤 다른 견종이 유행하면 이전의 유행견은 별 수 없이 유기견이 되기도 한다. 최근 이런 덫에 빠진 것이 바로 보더콜리다.
동네 반려인들에게 수소문해 개에 관해 알게 되었다. 보호자는 근처 원룸에 사는데 이 아이를 실내에서 키울 수 없어 마트 주차장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며칠씩 육지에 다녀올 때는 사료를 산더미처럼 뿌려놓고 간다고 했다. 그나마 가끔 산책은 하는데, 이를 안쓰럽게 본 이웃 아저씨가 보호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산책시킨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었다. 동물 학대로 신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요즘 유기견보호소에 보더콜리가 많이 입소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이 아이에게서 그 장면을 상상해 버렸다. 사실 이런 기우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보더콜리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3년 전쯤부터다. 아래 아파트 단지의 ‘호루’를 필두로 우리 단지에도 ‘별이’라는 보더콜리가 등장했다. 그러고는 종종 길에서 보더콜리들을 마주쳤다. 괜히 걱정이 됐다. 보더콜리가 몹쓸 ‘유행’의 희생양이 될까 봐서였다. 그리고 지금, 기우가 현실이 되었다.
목양견인 보더콜리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능이 가장 높은 종으로 소문이 나면서 보더콜리 새끼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하니 이런 현상은 동서 차이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중 매체의 영향이 크다. TV예능 ‘1박 2일’ 시즌1에서 ‘상근이’로 대표된 그레이트 페키니즈가, ‘삼시세끼’에서 ‘산체’로 출연한 장모 치와와가, ‘개밥 주는 남자’에서 ‘대, 중, 소’로 눈길을 끈 웰시코기가 각각 프로그램 방영 당시 높은 입양률을 나타냈다. 문제는 미디어에 노출된 개의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고 덜컥 입양한다는 점이다. 개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탱하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일까지는 계획에 없었거나 막상 닥치고 보니 능력이 미치지 못했을 테고, 유행이 지나면 해당 품종의 유기견이 급격히 느는 결과를 가져왔다.
보더콜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3, 4년 전부터 보더콜리가 똑똑하고 교감하기 좋은 견종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보더콜리와의 일상을 공개하는 유명 유튜브 채널이 널리 알려지면서 영상을 보고 입양을 결정했다는 이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보더콜리를 키우는 한 반려인은 유튜브에 등장하는 보더콜리는 그야말로 ‘이상적’이며, 현실은 초보 반려인이라면 더 큰 각오가 필요한 견종이 보더콜리라고 지적한다.
다시 유행으로 돌아와 보자. 보더콜리보다 앞서서는 비숑이 그 주인공이고, 그보다 더 앞서서는 웰시코기였고 그 전은 포메라니안이었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 발표에 따르면, 2010년 포메라니안 유기 건수는 399건이었지만 인기가 급증한 뒤 2018년에는 2217건으로 치솟았다. 2018년 비숑 프리제 유기견은 348마리였지만, 유행과는 무관했던 2010년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냄비 근성’ 운운하는 오랜 비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래브라도 레트리버가 31년 동안 최고 인기 견종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돌고 도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적어도 생명과는 무관한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54호 (22.11.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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