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전용기 탑승 불허’ 윤 대통령 “국익 때문”···기자단 “특혜 베푸는 줄 아나”

정대연·유정인 기자 2022. 11. 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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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을 이틀 앞둔 지난 9일 밤 대통령실이 MBC에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겠다고 일방 통보한 것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10일 이번 조치가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과 언론단체는 언론 탄압이자 대통령 전용기를 사유물로 여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공식적으로는 윤 대통령을 옹호하면서도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MBC 기자들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 조치에 대해 “대통령이 많은 국민의 세금을 써가면서 해외 순방을 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고, 기자 여러분들에게도 외교·안보 이슈에 관해 취재 편의를 제공해 온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MBC 등 언론이 지난 9월 자신의 미국 순방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한 비속어 발언 논란 보도가 국익을 해쳤고,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허용 여부는 대통령실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전날 밤 대통령실은 대통령실 출입 MBC 기자에게 “MBC의 외교 관련 왜곡·편파 보도가 반복돼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며 11~16일 윤 대통령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동남아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MBC는 (비속어 보도 후) 두 달 가까이 팩트를 체크할 수 있고 검증하고 개선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국익을 또 다시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판단에서 최소한의 취재 편의를 제한하는 조치를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야당은 대통령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제 외교무대에서 자신이 비속어를 내뱉어 평지풍파를 일으켰으면서도 반성은커녕 언론사 탑승을 불허하는 뒷끝 작렬 소인배 같은 보복 행위마저 이어간다”고 지적했다. 국회 과학정보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치졸한 정부의 황당한 언론 탄압”이라며 “대통령 전용기에서의 대통령 행위는 당연히 취재 대상이고 취재공간”이라고 밝혔다. 위선희 정의당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정녕 이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품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과 언론단체는 대통령실을 규탄했다. 대통령실 중앙 풀기자단은 이날 특별총회를 거쳐 채택한 입장문에서 “대통령 순방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실이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특정 언론사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는 일방적 조치로 전체 출입기자단에 큰 혼란을 초래한 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기자단은 “대통령실이 마치 특혜를 베푸는 듯 ‘취재 편의 제공’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다른 언론사에 대한 유사한 조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 이번 결정의 조속한 철회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6개 언론 현업단체는 이날 공동성명과 용산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을 통해 “윤 대통령은 반헌법적 언론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며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개인 윤석열의 사유재산 이용에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는 대통령실의 시대착오적 인식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외신기자클럽 이사회는 성명에서 “내외신 모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언론 보도의 논조나 성격에 관계 없이 모든 미디어에 동일한 접근 원칙이 적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성명에서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이자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보복적 탄압”이라며 “헌법상 가치로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비판했다. MBC는 “특정 언론사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거부는 군사독재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일”이라며 “비판 언론에 대한 보복이자 새로운 형태의 언론탄압”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 조처를 옹호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전용기 탑승 제한이 취재의 제한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유 침해’ ‘언론 탄압’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총성 없는 전쟁터인 순방 현장에서 다시금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통령실의 불가피하고도 최소한의 조치”라고 밝혔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가 “언론 통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성동 의원은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MBC는 민주당에 유리한 편파·왜곡방송을 해왔다”며 “이런 MBC를 두고 언론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취재의 자유가 있다면 취재 거부의 자유도 있다”고 썼다.

국민의힘 내부 기류는 공개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여당에 계속 정치적 부담을 지우는 데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이 이번 조처로 잊혀져가던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논란을 되살린 데 대한 정무적 실책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초선의원은 “참모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초대형 악재”라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SNS에서 “자유라는 헌법가치를 대통령 스스로 훼손하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대통령실과 거리를 두고 있는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번 일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 더 생각해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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