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압승 예상한 ‘레드 웨이브’는 왜 없었나?[미국 중간선거]
임신중단 이슈 예상보다 강력
‘트럼프 카드’ 역효과, 부실한 여론조사
정치 양극화 한쪽 일방 승리 어려워져
미국에서 8일(현지시간) 실시된 중간선거의 개표가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공화당이 예상했던 대승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 확실해졌다. 선거 전 상당수 정치분석가와 언론 매체가 ‘레드 웨이브(공화당 바람)’ 또는 ‘레드 쓰나미’가 닥칠 것으로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공화당이 하원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두고 상원 승부는 무승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레드 웨이브는 왜 해안에 닿지 못했을까.
미국 주요 언론들은 9일 공화당의 대승을 예상했던 정치 칼럼니스트들의 반성문을 줄줄이 게재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헨리 올슨은 “공화당이 대승할 것이란 내 예측이 폭망하면서 오늘 까마귀 고기를 많이 먹고 있다”고 썼다. 영어에서는 ‘까마귀를 먹다’(eat crow)라는 표현이 ‘굴욕을 맛보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레드 웨이브를 예상했다가 큰 망신을 당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도 “우파 그리고 우파에 경도된 정치 분석가들에게 겁먹었음을 시인한다”고 말했다. 확실한 증거도 없었는데 레드 웨이브가 오고 있다는 나팔소리에 장단을 맞췄다는 반성이다.
사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이 크게 이길 것이란 예상은 당연해 보였다. 중간선거는 ‘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 많은 대통령과 여당이 고전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운영 지지율이 40% 초중반으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두 번째로 낮았다. 미국이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는 등 경제 상황도 나빴다. 모두 공화당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각종 여론조사 추이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먼저 지난 6일 연방대법원의 임신중단권 폐기 판결로 촉발된 임신중단 이슈의 파괴력이 생각보다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방송사가 공동 시행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유권자가 이번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꼽은 이슈는 경제 문제(37%)였다. 임신중단 이슈는 27%로 두 번째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임신중단 권리를 선거 주요 쟁점으로 부각했는데 여성과 젊은층 유권자를 결집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상원의원 선거 출구조사를 보면 여성의 57%가 승리한 존 페터먼 민주당 후보를, 43%가 패배한 메메토 오즈 공화당 후보를 찍었다. 페터먼 후보에 대한 여성의 지지율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뜻이다. 임신중단 이슈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미시간, 켄터키, 버몬트, 캘리포니아, 몬태나 등 5개 주에서 중간선거와 함께 실시된 임신중단 권리 관련 주민투표에서 임신중단 권리를 옹호하는 측이 모두 이겼다는 사실도 이 이슈의 폭발력을 방증한다.
선거운동 막판 주요 격전지를 돌며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차지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히려 공화당 바람을 잠재우는 변수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 지지 유세를 하면서 자신의 2024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는데 이 때문에 경제에 쏠렸던 유권자들의 관심을 흐트러트렸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과격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씌움으로써 민주당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민주당 지지자가 많이 참여하는 사전투표 인원이 약 4500만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층이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강력히 결합하면서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바꾸는 ‘스윙보터’가 차지하는 공간이 훨씬 줄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선 어느 한쪽이 대승을 거두기 어렵다.
부실한 여론조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요 격전지 상원의원 선거 결과와 정치분석업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집계했던 선거 전 여론조사 평균치를 비교해 공화당 지지율이 과장됐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어 뉴햄프셔에서 공화당 후보는 사전 예측치보다 8.2%나 적게 득표했다. 펜실베이니아(3.8%), 위스콘신(2.6%)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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