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감세? “한국형 횡재세 필요”

반기웅 기자 2022. 11. 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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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휘발유·경유 가격이 게시되어 있다. 2022.7.6.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둔 정유사와 은행에 초과 이윤세 이른바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요국은 횡재세 부과를 검토 중이거나 부과하고 있는데, 한국도 횡재세 도입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위기를 배경으로 외부적 요인에 힘입어 전례없는 이윤을 벌었다면 횡재세 환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 자체 노력 없이 외부 요인으로 횡재… 한국형 횡재세 도입 필요”

10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개최한 ‘한국형 횡재세법 쟁점과 입법과제’ 토론회에 발제를 맡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으로 인해 높은 이익을 올린 것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라며 “기업이 자체 노력으로 벌었다고 보기 힘들거나 부당하게 여겨지는 이익에 대한 과세”라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기업의 횡재 이윤이 커지면 그만큼 소비자 입장에서는 손해기 때문에 분배적 영향이 분명히 있다”며 “횡재세는 극단적인 시장 변동이 초래하는 분배적 영향을 조절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서 횡재세는 선례가 있고 지금도 부과 중인 세금이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1917년 처음으로 초과이윤세를 도입했다. 수익률 8%를 초과하는 자산소득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횡재세를 부과했다. 1940년에도 시행된 바 있는데, 당시 횡재세는 독점기업의 부당축재를 막는데 쓰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각각 1915년, 1917년에 처음 횡재세(초과 이윤세)가 도입된 바 있다.

횡재세 도입, 세계적으로 확대

지금도 횡재세는 전 세계로 확대되는 추세다. 영국 의회는 셸과 BP 등 고유가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자국 석유·가스 개발업체에 대해 법인세 25%를 추가 부과 중이다. 이에 따라 횡재세가 부과되는 기업의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은 최대 65%에 달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스도 초과이윤세를 시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 기업들의 과도한 이익에 대해 33%의 ‘사회연대 기여’ 세율을 도입했다. 미국도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하루에 최소 3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석유회사에 한해 현재 판매 가격과 과거 5년 평균 석유 가격간 차이의 50%만큼 과세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석유회사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쟁 횡재’를 누리고 있다며 석유회사들이 석유 채취 개발에 투자하지 않으면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7.25 연합뉴스

한국에도 횡재세 법안이 발의됐다. 용혜인 의원(기본소득당)은 지난 9월 정유사와 시중은행에 대해 초과이득세를 물리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유사와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초과 이득’에 대해 50%에 해당하는 법인세를 물린다는 것이 골자다. 초과 이득으로 분류되는 과세표준은 2023년 사업연도를 기준 그해 소득금액의 85%에서 2015∼2019년 연평균 소득금액을 뺀 값(2023년의 소득금액×100분의 85-사업연도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개 연도 평균 소득금액)으로 정했다.

한국형 횡재세 법안 발의 “공론화 필요”

앞서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석유정제업자가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5억 원 이상 초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초과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고유가로 일부 업종에 과도한 이익이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만큼 이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토론을 맡은 김신언 한국세무학회 연구이사는 횡재세 부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세제감면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연구이사는 “영국에는 투자이익의 80%를 감면해주는 이른바 슈퍼공제가 있다”며 “국내 발의된 횡재세 법안에는 세제감면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횡재세가 징벌적 과세가 아니라면 기업이 자발적으로 이익을 투자하거나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횡재세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실패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횡재로 보이는 초과이익도 기업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데 필요한 투자와 위험 관리를 위한 재원”이라며 “수익의 변동성이 큰 산업과 기업에 횡재세의 부과는 법인세의 공평성을 악화시켜 기업실패의 위험을 구조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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