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권 침해 vs 국민 보호…'HIV감염자 체액전파 처벌' 놓고 헌재서 공방

박승주 기자 2022. 11. 1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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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법 "에이즈예방법 위헌 소지" 위헌법률심판제청
공개변론서 "낙인·차별" "국민공포" 의견 팽팽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등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에 자리하고 있다. 2022.11.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의 '전파 매개 행위'를 처벌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예방법의 위헌 여부를 놓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에이즈예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성 A씨 측은 "해당 조항은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질병관리청 측은 "형사처벌 규정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훨씬 크다"고 맞받았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에이즈예방법 제19조와 제25조 제2호 위헌제청'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에이즈예방법 19조는 HIV 감염인이 혈액 또는 체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25조 2호는 19조를 위반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등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에 자리하고 있다. 2022.11.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약 꾸준히 먹으면 감염 가능성 없어…비범죄화가 국제 추세"

A씨 측 대리인은 "감염병을 막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감염을 일으킨다면, 감염병 예방 수단이 오히려 국민 모두를 건강상 위험에 빠뜨린다면 그 조치가 정당한 조치겠냐"고 주장했다.

HIV 감염인인 A씨는 본인의 감염 사실을 밝히지 않고 콘돔 없이 구강성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재판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부장판사는 에이즈예방법 19조와 25조 2호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사건은 2019년 12월 헌재에 접수됐고, 2년11개월만에 공개변론이 열렸다.

A씨 측 대리인은 "HIV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검사나 진단을 회피해 자신의 감염 여부를 모른다면 수사와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며 "심판대상조항은 아이러니하게도 처벌로 금지하려는 행위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항레트로바이러스제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체내 HIV 바이러스 농도가 검출한계치 미만으로 떨어져 타인에 대한 감염가능성이 없는데, 심판대상조항은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 측 대리인은 "내밀한 사생활 영역을 형사처벌하는 등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면서 "HIV 감염자라는 낙인과 차별도 조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치명성과 전파가능성에서 에이즈와 비슷한 감염병도 있지만 에이즈만 두드러지게 차별하고 처벌하고 있다"며 결핵 등 다른 감염병과 비교했을 때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는 논리도 펼쳤다.

아울러 유엔에이즈 등 국제기구와 보건전문가들이 HIV 전파행위를 비(非)범죄화하는 정책이 HIV 전파 감소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점도 언급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24일 HIV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들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재의 전파매개행위죄 위헌판결 촉구 기자회견'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국민 보호 위한 조치…HIV 감염인 일상생활엔 제약 없어"

반면 질병청 측 대리인은 "체액의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며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에는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지만 눈물, 땀, 침, 소변, 토사물 등을 통해서는 감염될 수 없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파매개행위 금지는 일반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조치"라며 "현재 이보다 효과적이면서 덜 제한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특히 "HIV에 걸리면 완치약이 없고 평생 치료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치료를 중단하면 2~3주 내 바이러스 농도가 검출 가능한 수준으로 다시 증가해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며 "현재로선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질병청 측 대리인은 "에이즈에 대해 많은 국민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며 "전파매개행위를 한 사람을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달성하려는 공익이 전파매개행위를 저지른 자에 가해지는 형사상 불이익보다 훨씬 중대하다"고 밝혔다.

이어 "전파매개행위를 금지한다고 해서 HIV 감염인들의 일상생활에 제약이 가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성행위나 출혈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으므로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일상생활을 바꿀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참고인인 박재평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감염인이 되거나 될 우려가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보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심판대상조항은 전파매개행위를 형사처벌함으로써 그러한 행위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A씨 측 참고인인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는다면 '혹시 모를 전파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염가능성이 없음'으로 드러났다"며 "그런데 실제 법 집행 실무는 '전파가능성이 0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파매개행위를 처벌한다"고 지적했다.

양측 변론과 참고인 진술을 들은 헌재는 사건 기록 등을 검토한 뒤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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