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책 쓰기는 영적인 밥상 차리는 일"
복되고 반가운 소식이 복음
종교는 이타적 사랑 모범돼야
20권 출간한 교의신학 권위자
40여년 일기가 글쓰기 동력
사제로서 받은 사랑 돌려줘야
"지금은 기도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안타까운 넋들을 잘 받아주시고, 희생자 가족들을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손희송 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65)는 이태원 희생자들을 위한 당부로 말문을 열었다. 손 주교는 최근 '마르코 복음 기쁨의 문을 열다'(생활성서 펴냄)를 출간했다.
"복음(Gospel·福音)이라는 단어 자체가 복된 소식, 반가운 소식을 의미해요. 그중에서도 마르코 복음은 최초로 쓰인 복음서죠. 마르코 복음은 짧으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이라는 건 예수님을 만나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이 그것을 도와드렸으면 좋겠어요. 독자 분들이 영적인 여행을 하는 데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해요."
손 주교는 책을 많이 발간한 성직자다. '사계절의 신앙' '미사 마음의 문을 열다' '절망 속에 희망 심은 용기' 등 신학 분야 양서를 많이 펴냈다.
"처음 주교 임명을 받았을 때 정진석 추기경 님을 찾아뵀어요. 그 자리에서 추기경 님이 '주교가 돼도 책은 계속 써'라고 말씀하셨어요. 성직자에게는 선교의 사명이 있어요. 책 쓰기도 중요한 선교사역 중 하나죠."
원래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냐는 질문에 손 주교는 "일기를 오랫동안 써온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신학교 마치고 군대 생활할 때 가끔씩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1986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부터는 거의 매일 썼죠. 지금도 쓰고 있는데 두꺼운 노트로 한 30권 분량 돼요. 다시 읽어보면 유치할 때도 기특할 때도 있어요."
손 주교의 요즘 고민은 코로나19 이후 신자들의 영성 회복이다.
"성당을 못 나오다 보니 신앙적 열정이 약화된 분들이 꽤 있어요. 그런 분들이 다시 영성을 찾도록 도와드리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훌륭한 '영적 밥상'을 차려드려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신부님들에게 일단 가톨릭의 중심은 미사니까 성스럽고 좋은 미사를 준비하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나 1986년 사제수품을 받은 손 주교는 독일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교의신학을 공부하고 가톨릭대학에서 오래 강의를 했다. 2015년 주교품을 받았다.
"6대째 신자 집안이에요. 고조부님이 병인박해 때 순교하셨죠. 어린 시절 성당이 가까이에 없어서 저희 집 안방이 공소 역할을 했어요. 아버님이 공소회장이셨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사제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죠. 집안에서도 원했고요. 사제는 보람 있는 자리예요. 제가 유학에서 돌아와 용산성당 주임신부를 할 때 신자 분들이 어디를 가나 '우리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고 불러주셨죠. 그 표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한 것 이상으로 사랑받는 자리가 사제라는 자리예요. 그러니 더 많이 돌려드려야죠."
손 주교는 첨단문명 시대일수록 정신 영역인 종교는 더 절실해진다고 말했다.
"기계도 결국 사람이 있어야 움직이죠. 사람에게는 머리의 영역과 가슴의 영역이 있어요. 종교는 바로 그 가슴의 영역을 책임져주는 일이에요. 결국 세상을 행복하게 움직이는 일은 가슴이 하는 거예요."
손 주교는 성직자 중에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존경한다. 자신을 '주님 포도밭의 일꾼'이라고 말했던 베네딕토 16세는 그에게 큰 스승이다.
"베네딕토 교황께서는 세계의 역사는 '자기에 대한 사랑'과 '타인을 위한 사랑' 이 두 형식 간의 싸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자기집착적 사랑과 이타적 사랑이 부딪히는 게 현실이죠. 종교는 이타적인 사랑을 가르치는 일이에요. 이타적인 사랑이 결국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을 살게 하니까요. 이타적인 사랑의 모범을 보이는 게 종교가 할 일이에요. 내 구원뿐 아니라 사회의 구원도 생각하는 일, 그게 종교의 사명이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 손 주교는 웃으며 마태복음 25장 21절을 음송했다.
"착하고 성실한 주님의 종으로 살다가 주님 곁에서 기쁨을 누리는 게 소원이죠."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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