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인기는 톰 크루즈 급…K콘텐츠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꿈 아냐"
30여년간 할리우드서 활약한 배우 밍나 원
디즈니 '뮬란' 성우로 유명
피부색 아닌 연기로만 승부
1998년 뮬란 성우로 발탁
표정·목소리 캐릭터에 녹여
“한국의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콘텐츠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리우드에서 이정재는 톰 크루즈에 버금가는 스타입니다. 한국 연예계가 지금처럼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 K콘텐츠의 ‘브리티시 인베이전’도 꿈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 영화산업의 ‘메카’ 할리우드에서 30여 년간 살아남은 아시안 배우가 있다.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 마블의 ‘에이전트 오브 쉴드’와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된 스타워즈 시리즈 ‘만달로리안’에서 활약한 중국계 미국인 밍나 원(59)이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밍나 원은 최근 한국 콘텐츠의 위세를 1960년대 영국의 미국 문화시장 점령에 비교했다. 전설적인 록그룹 비틀스를 필두로 시작한 선풍적 대중문화 트렌드에 견줄 만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K콘텐츠 신드롬을 확신하고 있었다. “아시안 배우가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기쁘다”는 밍나 원을 이달 초 한국경제신문이 만났다.
“뮬란 캐릭터는 나의 분신”
밍나 원은 한국인에게는 조금 낯선 배우다. ‘조이 럭 클럽’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영화와 의학 드라마 ‘ER’ 등을 통해 꾸준히 활동했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많이 소개되지 못했다. 일부 골수팬이 있었을 뿐이다. 팬들은 밍나 원의 끈질긴 할리우드 도전기를 높이 산다.
1986년 데뷔한 밍나 원은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배우들의 인지도가 없던 시절부터 끊임없이 오디션을 봤다. 당시 동양인 배우들에게 할리우드의 벽은 높았다. 모든 캐스팅은 백인 위주였다. 아시아인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주인공의 친구나 술집 종업원과 같은 캐릭터뿐이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인종과 상관없이 배역을 주는 ‘컬러 블라인드 오디션’을 노렸다. 피부 색깔이 아니라 연기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오랜 무명 시절을 버텨냈고 마침내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을 만났다. 인종이 상관없는 성우로서다. 1998년 개봉한 이 작품은 총 제작 기간만 5년이 걸렸다. 그는 3년 동안을 녹음실 안에서 성우로 연기했다. 단순히 목소리 연기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표정과 손짓, 몸짓 심지어 머리를 넘기는 습관까지 뮬란의 캐릭터에 반영됐다. 부스 밖에서 애니메이터들과 작가들이 그의 동작과 표정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표현하면서다. 그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신데렐라’나 ‘미녀와 야수’ 등과 달리 뮬란은 나 자신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먹왕 랄프2’의 조연 뮬란 역과 류이페이가 주연을 맡은 실사 영화 ‘뮬란’ 에서 궁녀 역을 맡는 등 뮬란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스타워즈 시리즈로 ‘너드계 오스카’ 받아
밍나 원의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전환점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부상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등의 출현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 그는 “지금은 시청자가 어디에 있든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받는다”며 “플랫폼의 등장에 따른 엔터테인먼트 혁신으로 지구촌이 더욱 좁혀졌다”고 말했다. ‘1인치의 장벽’ 자막 또한 OTT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디즈니 플러스의 단골 배우인 밍나 원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가 됐다. 그는 마블의 드라마 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에 7년째 요원으로 출연하면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글로벌 흥행작 스타워즈 시리즈 ‘만달로리안’과 스핀오프(파생작) ‘북 오브 보바 펫’에서 패넥 섄드 역으로 ‘너드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셰턴상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할리우드 경력 30여 년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그의 이름이 새겨지기도 했다.
“할리우드 K콘텐츠 신드롬 가능”
밍나 원은 글로벌 OTT의 콘텐츠 발전에는 한국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그는 “기존에 미국 시리즈물은 평균 22개 에피소드로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한국 콘텐츠처럼 6~10개로 줄었다”며 “스토리도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가 대세”라고 말했다. 최고의 한국 콘텐츠로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꼽았다. “오징어 게임은 폭력을 넘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를 그려낸 점이 독특했죠. 한국 특유의 유머와 연출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K콘텐츠 신드롬이 가능할까. 밍나 원은 “예스”라고 단언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의 인기,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이정재의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 등으로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밍나 원은 이정재가 최근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트’ 주연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뒀다. 아시안 배우가 스타워즈의 주연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그는 “아시안 배우가 스크린에서 능력 있고 다재다능한 캐릭터로 비쳐 매우 기쁘다”며 “아시안 배우가 영화 주연을 맡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일상적인 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밍나 원은 사실 K콘텐츠가 미국 시장에 더욱 확산하길 간곡히 바라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는 한국 화장품업체와 손잡고 할리우드에 ‘K뷰티 라인업’을 론칭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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