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기념사업회 ‘청년동의회’봉사단 조직,유학생에 한국역사 알리기

정충신 기자 2022. 11. 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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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이 최근 대학생 봉사단인 '청년동의회'를 설립해 아시아발전재단(이사장 김준일)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역사 알리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 이사장은 10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사업회는 한인들의 교육을 위해 32개의 학교를 설립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조국독립을 위해 사용 후 목숨까지 바친 최재형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최근 대학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조직, 한국 역사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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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기념사업회가 올 하반기 설립한 대학생 봉사단 청년동의회가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역사 알리기를 위한 역사탐방 프로그램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최재형기념사업회가 설립한 대학생 봉사단 ‘청년동의회’가 지난 10월1일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한국 역사를 소개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문영숙 이사장 "최재형 정신 계승, 외국인 유학생 대상 역사탐방 활동"

‘청년동의회’국외 최초 의병단체 이름 따와…올해 200명 회원 모집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이 최근 대학생 봉사단인 ‘청년동의회’를 설립해 아시아발전재단(이사장 김준일)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역사 알리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 이사장은 10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사업회는 한인들의 교육을 위해 32개의 학교를 설립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조국독립을 위해 사용 후 목숨까지 바친 최재형 정신을 계승하고, 선열들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최근 대학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조직, 한국 역사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봉사단 ‘청년동의회’는 국외 최초의 의병단체인 동의회에서 따온 것이다.

문 이사장은 "청년동의회는 대한민국의 고난과 도전, 역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올해부터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탐방 활동을 시행하고 있다"며 "오랜 전통과 역사가 있는 장소, 근대시기 개화와 관련한 장소, 항일독립운동 장소, 6·25전쟁과 분단과 통일을 이야기 하는 장소, 대한민국의 발전과 관련된 장소 등을 탐방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올해 2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세계인에게 익숙한 K-POP이나 드라마, 한복입기, 김치 담그기 등 문화체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많다"고 소개했다.

청년동의회는 지난 6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11월11일)’을 앞두고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전투기념비를 찾아 기념비 주변 낙엽을 청소하고 기념비를 닦기도 했다. 당시 봉사활동에는 미국·프랑스 유학생도 함께 해서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고 우정을 굳건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문 이사장은 "인재육성과 역사교육 차원에서 국내 청소년을 대상으로 역사강연과 역사탐방을 시행하고 세계에 한국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내년에도 2기 대학생 봉사단을 운영하겠다"며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봉사단을 파견해 재외동포와 현지인들에게 역사문화교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은 1860년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1869년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로 이주 후 자수성가해서 연해주 최고 부자가 됐다. 최재형은 조국인 조선으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은 적이 없었음에도 1908년 안중근, 이범윤, 이위종과 함께 국외 최초의 의병단체인 동의회를 조직 후 총장에 올라 막대한 군자금까지 후원했다. 1909년에는 자신이 운영하던 대동공보사에서 안중근 하얼빈의거를 기획하고 지원했다. 1911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권업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고 1914년에는 한인아령50주년 기념회장, 1918년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 1919년 3월에는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1919년 4월 11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역임했다. 1920년 4월 5일,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4월 7일 재판도 없이 총살되었는데 일본군은 시신 매장 장소를 감춰 지금은 유해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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