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여문 배우 정일우의 '하이킥' [HI★인터뷰]

정일우가 인터뷰를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제공

"20대 때 더 많이 깨지고 더 힘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일하면서 배신도 당해보고 상처도 받으면서 단단해진 거 같은데, 20대 때 더 많은 경험을 했다면 더 좋은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일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정일우가 어느덧 데뷔 17년차의 베테랑 배우가 됐다. 데뷔 이후 그의 앞에 펼쳐졌던 탄탄대로는 스스로에게 약과 독으로 동시에 작용했다. 뒤늦게 쓰라린 경험들을 하면서 아쉬움도 남았다지만, 덕분에 정일우는 단단하게 여물었다.

여러 일들을 겪고나서 30대는 쉬지 않고 일을 하자는 결심을 했다는 그다. 경험이 쌓이면서 제법 여유로워진 정일우는 "40대 때는 좀 더 좋은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이킥' 이후 정일우는 꾸준히 노력했다. 사극에 도전하고 캐릭터의 변주를 시도하며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실제 자신과 닮은 역할보다는 다른 역을 선택하려고 했다는 그는 "캐릭터와 책(시나리오)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시트콤의 인기가 뜨거웠던 탓에 지금도 '하이킥' 이미지가 남아있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배우가 대표작이 있는 건 오히려 감사할 일이죠.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려 하기 때문에 저에게 또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생 캐릭터를 꼽아달라는 말에도 정일우는 '하이킥'의 윤호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아무래도 윤호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연기적으로 많이 느낀 건 '해치'의 영조 역할이예요. 아픔도 많고 성장해 나가는 캐릭터였고, 그때 연기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정일우가 인터뷰를 통해 진솔한 생각을 밝혔다. 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제공

'하이킥'이 유튜브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또한 알고 있단다. 정일우는 너무 오래된 작품이어서 크게 실감이 나진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하이킥'의 스태프였던 분들을 만나거나 하면 '첫사랑이었어요' 하며 장난으로 얘기하는 친구가 많아요. 어린 친구들도 공감하면서 아직도 재밌게 봐주는 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요. 어쩌면 '하이킥' 같은 작품은 앞으로 못 만나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알려진대로 정일우는 20대 후반에 뇌동맥류 판정을 받고 한 달간 칩거 생활을 하기도 했다. 투병 이후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정일우는 긍정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원래 조급함도 많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인생을 즐기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소소한 행복이 뭔지도 알게 됐죠. 지금도 추적검사는 계속 하고 있고 불안한 마음은 늘 있어요. 액션 연기를 한다거나 뛰면 두통이 심하게 올 때도 있지만, 걱정만 하고 살 순 없잖아요. 조금 더 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늘 '좋은 배우'가 무엇일까 고민한다는 정일우는 "정답은 없는 거 같은데 어떤 역을 하더라도 그 캐릭터가 되어서 연기하는 게 좋은 배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가 아닌 인간 정일우의 꿈을 묻자 "이제는 개인적인 삶과 일하는 삶의 구분이 없다. 워낙 노출이 되어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보니까. 좋은 배우가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열심히 연기를 하다가 나이가 들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