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금감원장이 손태승회장에게 던진 '현명한 판단'…내포한 의미는?

노희준 2022. 11. 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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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금융사 긴밀한 소통 필요할 때 "현명한 판단 기대"
연임 적신호 손태승 법적 다툼 하지 말라 우회적 발언
외압 막겠다는 실세 금감원장, 자가당착 발언 지적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중징계가 확정돼 연임에 적신호가 들어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향해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10일 말했다. 손태승 회장에게 “징계에 불복해 법적 다툼을 이어가지 말라”는 우회적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는 곧 ‘물러나라’는 주문이다. 그는 손 회장 제재를 두고 제기되는 일각의 ‘낙하산’ 의혹과 관련해 준비한 듯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복현 금감원장
이날은 이 원장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금융권 글로벌사업 담당 임원들과 만나 ‘글로벌 금융시장 리스크 현황 점검’ 간담회를 연 날이다. 금감원은 간담회 이후 백브리핑을 하겠다며 기자들과 만났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일부에서는 마치 일선 창구에서 벌어진 일을 본부에서 어떻게 아느냐 등의 보도도 있지만, 본건(라인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은 본점에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음에도 고의로 벌어진, 되게 심각한 소비자권익손상 사건”이라고 했다. 또 “금융위 소위원회 논의나 전체회의에서도 다양한 쟁점에 대한 의견이 있었지만, 이 건이 가벼운 사건이라든가 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과거 소송 시절과 달리 지금은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이 긴밀히 협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할 때”라며 “당사자(손태승 회장)가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전날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해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했다. 중징계 처분을 받으면 향후 3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선임될 수 없다.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우리금융은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은 손 회장 소송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전례가 있어서다. 손 회장은 앞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마련 의무 위반 혐의로 문책경고 징계를 받자 소송을 냈다. 현재 본안소송이 진행 중이며 그는 2심까지 승소했다. 손 회장이 이번 처분에도 취소소송을 내고 집행정지를 이끌어내면 징계 효력이 중지돼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 이 원장의 발언은 이런 사태를 사전에 막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당국의 이번 중징계 결정을 손 회장을 쫓아낸 뒤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 위한 사전 정비 작업으로 보고 있다. 이 원장은 이날 낙하산 의혹도 차단했다. 그는 “정치적 외압이든 외압은 있지 않다”며 “혹여 향후 어떤 외압이 있다면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거버넌스를 전제로 자율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대원칙과 시장 원리에 대한 존중이 있다”며 “그걸 손상시키는 어떤 움직임이 있다면 무조건 막겠다. 금융위원장도 같은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외압을 막겠다는 금감원장이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외압을 막겠다고 해놓고는 금감원장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워딩을 하느냐, 그 말 자체가 외압”이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오른쪽)
이날 금감원장은 흥국생명의 5억 달러 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권(콜옵션) 결정 번복과 관련해 불거진 ‘당국 책임론’에 대해선 ‘사적 자치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태광그룹의 대주주 증자 등을 거쳐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에 나섰더라면 흥국생명의 건전성지표(RBC, 지급여력비율) 하락도 막고 해외 자금 시장에서의 충격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사전에 대주주가 됐든 어디가 됐든 다소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증자 요청 등) 의사를 구한다거나 유도를 했다면 그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의 비판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어떤 것은 결국 사적 자치의 원칙상 저희 권유나 노력에 (회사가) 응하지 않으면 그걸 지나치게 강제적으로 하는 것은 다른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흥국생명이 지난 1일 애초에 신종자본증을 조기상환하지 않기로 하기 이전에 대주주 증자 방안 등을 당국이 요청했는데 회사측이 당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이번 건은 흥국생명과 관련한 시장 반응을 대주주나 흥국생명측에서 좀더 뼈저리게 받아들여서 저희와 함께 호흡해서 정리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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