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협에 중국에서 미국 쪽으로 손익계산 바꾸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친밀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미 보잉사의 CH-47 치누크 헬리콥터 구매를 고려 중이다. 또한 미군이 필리핀에 더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국방협정 협상에 힘을 싣고 있다. 이전 정권이 미군과 합동 훈련을 중단하고 중국산 무기를 사려 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한때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독립 이후에도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으나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친중 행보를 밟으며 양국 관계는 소원해졌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016년 취임 후 베이징을 방문해 “이제 워싱턴과 결별할 때”라고까지 했으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적극 참여해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코로나19 백신을 준 것을 두고 “우리의 은인”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러나 친중 정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서필리핀해(중국명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터져 나오며 필리핀 내에서 반중 감정이 다시 불거졌다. 2016년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이 남중국해 해역에 설치한 해양구조물은 중국 영유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으나, 중국은 여전히 남중국해 90%가 중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리핀은 2020년부터 지난 9월까지 중국에 외교적 항의를 405건 이상 전달했다. 중국이 서필리핀해에서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침범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필리핀은 2017~2022년 사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국방예산을 증액했다.
인도네시아 또한 미국과 합동 훈련을 확대하고 보잉사 전투기 수십대 구입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1250억달러(약 171조6000억원) 규모 군 현대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는 외교적으로 어느 한 축에 치우치지 않는 비동맹 노선을 오래도록 펼쳐왔지만, 나투나 제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을 빚으며 안보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중국에 경고하는 차원에서 직접 나투나 제도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투나 제도에 군함도 여러 차례 파견했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투나 제도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해상영유권을 주장하며 선포한 경계선인 ‘구단선’ 부근에 있다. 나투나 제도 자체는 구단선 바깥에 위치하지만 인도네시아의 EEZ 일부가 구단선과 겹친다. 중국 어선과 정부 선박이 나투나 제도 근처까지 넘어오는 일이 잦아서 문제가 돼왔다.
미국과 중국은 동남아에서 자국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분투해왔다. 그러다 최근 중국이 군사개발을 가속화하고 대만과 남중국해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면서 일부 국가가 태도를 바꿨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싱가포르 싱크탱크인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이안 스토리 선임연구원은 “미·중 갈등과 중국의 위협이 이 국가들이 국방을 강화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분명한 동인”이라고 밝혔다. 빌라하리 카우시칸 전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이 지역에서 미국이 전략 방정식의 중요한 요인이며 모든 이들의 이해관계에 이것이 반영됐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분석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2일부터 첫 동남아 순방에 나선다. 미·아세안 정상회의 및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진행하며, 캄보디아 및 인도네시아 정상과도 회담한다. 앞서 미국은 필리핀 및 인도네시아와의 안보 강화 및 협력에 반색한 바 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은 마르코스 대통령과 회담하며 미·필리핀 관계를 “철통”이라고 불렀으며,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을 만나 양국 관계가 “상당한 진전”을 거뒀다고 했다.
이에 중국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국장은 중국이 특히 필리핀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추세를 주목하면서 동남아 일부 국가에 미국과 너무 밀접해지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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