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富벨탑 쌓은 신자유주의 학파···금융위기로 무너지다

최형욱 기자 2022. 11. 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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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의 시대(빈야민 애펠바움 지음, 부키 펴냄)
프리드먼·래퍼 등 보수 경제학자
시장 앞세워 감세·규제완화 주도
지구촌 사회·정치·이념까지 바꿔
세계화·경제성장 등의 성과에도
불평등·제조업 쇠퇴 부작용 초래
40년 걸친 부상과 몰락·유산 담아
밀턴 프리드먼(위쪽부터), 아서 래퍼, 로버트 루카스, 조지 스티글러
[서울경제]
1937년에 찍은 밀턴 프리드먼과 부인 로즈 디렉터. 두 사람은 그 다음해 결혼해 2006년 프리드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년 가까이 해로했다. 로즈는 공공 정책 문제를 함께 연구하는 등 프리드먼의 지적 동반자였다./사진제공=부키

1973년 미국은 징병제를 폐지했다. 베이버 부머들이 성인이 되고 투표 연령이 18세로 낮아지면서 잠재적인 군 인적 자원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반전 여론이 커진 가운데 군사기술 발전으로 신병보다는 숙련된 병사들이 더 필요한 것도 한 이유였다.

징병제 폐지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징병제가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자유 시장주의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경제적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약간씩 세금을 더 내 완전 지원병제인 모병제로 운영하는 것이 비용 대비 편익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국가 운영의 근본인 국방에도 시장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전쟁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 괴리된 결과는 이전보다 더 커진 전쟁 가능성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등에서 보듯 전쟁은 국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비정상적인 행태가 아니라 미 정부의 일상적인 업무로 자리 잡았다.

신간 ‘경제학자의 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념적 태동부터 전 세계를 장악하고 몰락하는 과정, 그 시대가 남긴 유산과 한계를 세밀하게 살핀다. ‘거짓 예언자들, 자유 시장, 그리고 사회의 균열’이라는 원래 부제대로 책은 프리드먼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학자들이 경제적 진화라는 성과에도 불평등 심화, 저성장 고착화, 자유민주주의 후퇴 등의 부작용을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경제·비즈니스 분야 주필인 빈야민 애펠바움이다. 그는 프리드먼이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1969년부터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까지 40년간을 경제학자의 시대라고 부른다. 책은 1950년대 초 젊은 시절의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출세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투덜대며 뉴욕 연방준비은행 건물 구석에서 인간 계산기처럼 일했던 일화로 시작한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쓸만한 질문은 던지지만 현실에 둔감한 수학자에 불과하다며 사회로부터 무시당했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라 불리는 폴 볼커 연준 의장이 1987년 의회 청문회에서 싸구려 시가를 피우고 있다. 볼커는 프리드먼의 통화정책 이론을 적용해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다./사진제공=부키

하지만 제2차대전 이후 고성장을 구가하던 미 경제가 1960년대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에 빠지면서 신자유주의 학자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인플레이션이 경제 성장과 수요 증가로 발생한다는 케인즈학파의 이론으로서는 설명할 길이 없는 현상이었다. 신케인즈언인 폴 새뮤얼슨은 스태그플레이션 해법으로 가격 통제와 정부 지출 확대를 제시했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이 때 시카고대에서 둥지를 틀고 와신상담하며 신자유주의 학자 군단을 육성하던 프리드먼이 나섰다. 타고난 싸움꾼이자 달변가인 그는 통화량이 성장과 실업률, 물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통화주의’를 내세워 경제 운영에 자신감을 잃은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시중 통화량만 줄이면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이론은 현실에서도 일부 효과를 발휘한다. 이후 조지 스티글러, 아론 디렉터, 로버트 루카스, 아서 래퍼 등 보수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해 대변혁을 일으켰고 정부와 국민들의 사고 방식까지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1981년 무렵 ‘래퍼 곡선’ 앞에 서 있는 경제학자 아서 래퍼. ‘래퍼 곡선’에 따르면 세율이 떨어지면 정부 세수가 늘어난다. 세율이 높으면 곡선 위에서 비행기 코의 뾰족한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는 세율이 높을수록 세수가 늘어나지만 세율이 뾰족한 지점보다 더 오르면 세수는 줄어든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사진제공=부키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금지법을 적극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나아가 정부를 설득해 규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 생명을 달러 가치로 환산했다.”

때로는 경제학자들이 직접 정책 플레이어로 등판하기도 했다. 1970년 아서 F. 번스를 시작으로 경제학자가 연준 수장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나아가 이들은 ‘작은 정부-큰 시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지구촌 전체로 퍼뜨리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아시아·남미·동유럽의 개발도상국 학생들을 시카고대로 불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치며 이른바 ‘시카고 보이즈’들을 길러냈다. “프리드먼은 20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큰 이데올로그로,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삶을 바꾸어 놓은 보수주의적 반혁명의 강고한 선지자로 기억될 만하다.”

시카고대학에 유학 온 남미 학생들. 이들은 신자유주의 학문을 배운 뒤 고국으로 돌아가 최고위 경제 정책 입안자로 일했다./사진제공=부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학파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바벨탑처럼 무너졌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2008년 10월13일 미국 9개 대형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시장 자율성을 포기하고 미 재무부를 찾아 정부 지원을 호소한 게 단적인 사례다. 신자유주의 학파는 이전에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 극심한 물가 상승에 빠진 영국을 구원하기 위해 마거릿 대처 총리의 지원 아래 자신의 통화주의를 실험하다가 경기 침체와 실업난을 불러오며 실패했다.

칠레 피노체트 정권은 프리드먼의 조언에 따라 무역 개방, 자본통제 완화 등을 단행했다가 경제난만 초래했다. 반면 한국과 대만은 국가간 비교 우위론을 거부하고 정부 주도의 산업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한 것도 프리드먼이 아닌 케인즈주의 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월가 규제를 외면하다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사진제공=부키

저자는 이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남긴 성과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가 시장을 받아들이면서 대다수의 삶이 더 풍요롭고 건강해졌고 상품과 돈과 사상이 흐르면서 여러 나라가 하나로 긴밀하게 묶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성장 극대화와 효율성만 추구하는 바람에 경제적 평등과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미래 세대를 희생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불평등 심화, 제조업 쇠퇴, 임금 정체 등의 부작용이 쌓이면서 성장 속도마저 느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경제는 가장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이다. 부를 낳는 강력한 기계다. 하지만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는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가장 윗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아니라 가장 아랫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다.” 3만5000원.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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