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바보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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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운영하고자 일생 헌신한 의사였다.
"나도 보았지.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 한둘을 의심하다 보면 진짜 가난한 환자도 의심하게 되지.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과 자기 양심은 못 속인다네."
"스승님을 닮으면 바보 되게요." 장기려 박사는 허허 웃으시면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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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문병하목사의 희망충전]
성산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운영하고자 일생 헌신한 의사였다. ‘돈이 있으면 치료비를 내시고, 없으면 그냥 가세요’라는 식의 병원 운영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간혹 돈이 있는 사람들도 욕심을 내어 거짓말을 할 때도 있었다. 하루는 옷도 멀쩡하게 있고, 손에 다이아반지까지 낀 사람이 치료를 다 받고 난 뒤에 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장기려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없다면 할 수 없지요. 그냥 가시죠.”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서무과 직원이 박사님에게 손짓 눈짓으로 그 사람의 손가락을 보시라고 한다. 그 환자가 돌아간 후 장기려 박사가 말했다. “나도 보았지.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 한둘을 의심하다 보면 진짜 가난한 환자도 의심하게 되지.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과 자기 양심은 못 속인다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부산의 밤거리,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는 시간에 한 제자와 함께 야시장을 찾았다. 새벽기도 중에 202호실 환자의 해진 내복이 떠올라 주님께서 자신에게 사주라고 하시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내복가게에 들른 것이다. 두툼한 남자 내복을 하나 들고 얼마냐고 물으니, 주인이 선심 쓰듯 말했다. “500환이 본전인데요, 가게 문도 닫을 시간이고 하니, 450환에 드리지요.” 이 말에 정색을 한 장기려가 말했다. “내가 이제야 대한민국 백성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알 것 같소. 아니, 주인장. 500환 물건을 어찌 손해 보면서 판단 말이요. 여기 600환이요. 손해 보면서 물건을 팔면 언제 돈을 벌겠소.” 주인은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게를 나가면서 곁에 있던 제자가 세상물정에 어두운 스승을 안타까워하면서 뭐라고 하니, 장기려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그것을 모르겠나.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다시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어리석은 지혜자가 되는 것보다 영리한 바보가 되라”고 했습니다. 바보는 시키는 대로 하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바보는 꾀를 부릴 줄 모릅니다. 바보는 불평이 없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으며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참된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이 5리를 가고자 하면 10리까지 가주고,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도 돌려대고, 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원수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따르고자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약삭빠른 사람들에 비해, 제 몫을 못 찾아먹고, 다소간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바보라고 놀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달라야 합니다.
어느 해 설날이 되어 제자들(북에서 같이 월남한 사람들)이 장기려 박사를 찾아와 세배를 하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그중에 총명하기는 하지만 욕심이 많은 제자가 염려되어 덕담을 했습니다. “여보게, 올해는 날 좀 본받아 보게나.” 그 제자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스승님을 닮으면 바보 되게요.” 장기려 박사는 허허 웃으시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바보 소리를 듣는 것 보니까 이제 성공한 것 같구만. 여보게, 세상에서 바보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네 아는가?”
글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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