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령을 받아서 북한선수단을 응원했다고요?
지난 2018년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북한선수단을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응원했는데,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이를 북한 지령에 따른 것으로 보고 응원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수사하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윤석열 정권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공안사건을 조작하려고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남진보연합 회원 등 경남지역 통일운동 활동가 5명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들과 관련 단체들은 10일 “국정원이 제시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친일적폐 청산운동을 총파업 투쟁과 결합시켜 보수세력을 타격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교육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등 24쪽에 이르는 범죄사실이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또 “‘2018년 8월14일 저녁 8시께 창원시의 한 주점에서 만난 북한 문화교류국 사람으로부터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북한선수단 응원활동을 펼쳐서 반미 자주화 투쟁을 전개하라는 대남 공작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8년 8월31일부터 9월15일까지 경남 창원시에서 ‘2018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북한은 선수 12명, 임원 10명 등 22명으로 꾸려진 선수단을 창원에 보냈다. 이에 맞춰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를 주축으로 경남도민 100여명은 아리랑응원단을 구성해, 입국 때부터 출국 때까지 북한선수단을 응원했다. 당시 응원단은 하얀색 바탕에 독도가 포함된 파란색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남북단일기를 들고 북한선수단이 출전하는 경기마다 찾아가서 응원했다.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에 대해 당시 응원단에 참가했던 시민사회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경남진보연합은 “압수수색이 9일 아침 8시부터 10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압수수색을 당한 회원들과 가족들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태를 윤석열 정권의 공안 조작사건으로 규정하고,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공동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리랑응원단 단장을 맡았던 박봉열 진보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당시 창원시와 협의해서 아리랑응원단을 만들었다. 앞서 같은 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기였다. 창원을 방문하는 북한선수단을 응원함으로써 남북 화해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로 응원단을 구성했다. 입국·출국·숙소 등 가장 기본적인 것까지도 창원시와 소통하며 파악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 쪽과 접촉한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윤석열 정부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위기탈출 목적으로 공안사건을 조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도 되지 않는 시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아리랑응원단의 주축을 이뤘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의 김영만 대표는 “아리랑응원단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 창단해서, 이후 남북 경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선수단을 응원하고 있다. 2018년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북한선수단을 응원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북한 지령을 받아서 한 것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아리랑응원단 창단의 주역인 나부터 잡아가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기를 맞은 윤석열 정권이 공안정국 조성을 유일한 해법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종북주사파는 협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미 이런 계획을 갖고 흘린 말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안보수사지휘과 담당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관련 영장을 발부받아 합동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인원과 구체적 범죄사실 등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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