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가게 접은 뒤 영등포청년건축학교에서 새 길 찾았죠”
청년들에게 타일·미장·도배·목공·홈케어 등 주거관리 기술 교육
[서울&] [커버스토리]
“청년과 지역주민 서로에게 도움되는 선순환 구조 만들 것”
네트워크·자원 활용 ‘우주관’ 구축
청년 건축 전문인력 공동체 만들고
지역 취약계층 집수리 봉사 앞장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영등포청년건축학교 도배 실습장에서 도배하는 수강생들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열심히 도배지를 천장과 벽에 붙이고 자르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아~, 짜증 나.” 하지만 한 수강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에 눈과 귀가 쏠렸다. 도배지가 벽 길이보다 짧아서 문제가 생겼다. “미니스커트구나.” 도배강사 신명옥씨가 실습 현장을 살펴보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신씨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다시 붙이면 된다”며 수강생을 격려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에서 11월에 있는 도배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강생은 모두 8명이다. 도배기능사 시험에 합격하려면 3시간20분 안에 천장과 3면의 벽을 규정에 맞게 도배해야 한다. “시간뿐만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모두 풀어야 합격이죠.” 신 강사는 1일 “보통 도배기능사 시험 합격률이 30% 정도”라며 “이곳 학생들은 절반 이상 합격할 것 같다”고 했다.
신 강사는 강의하는 날을 제외하면 매일 현장에서 일하는 20년차 ‘베테랑’ 도배공이다. “순발력과 이해력이 빨라야 해요.” 신 강사는 “보통 현장에서 3명 이상 협업하기 때문에 도배공은 대인 관계도 좋아야 한다”며 “서로 많이 이해하고 감싸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 강사는 여성 도배공이 늘어났다고 했다. “5~10년 사이에 여자가 많아졌어요. 남자보다 섬세하고 대화도 부드럽게 하죠.” 신 강사는 “예전에는 남자가 대부분이었고 그들이 윽박지르면 주눅도 들고 기도 많이 죽었는데 지금은 여성이 더 많아 현장이 무척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몸 쓰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김경아(29)씨는 이날 도배 연습을 하러 왔다. 올해 초 다니던 미디어 관련 회사를 그만두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집수리 전문과정을 배우고 있다. 3월부터 도배, 장판, 타일, 목공, 홈케어 등 다양한 과목을 총 350시간 이수하면 된다. 김씨는 “도배기능사 자격 취득 과정이 마지막 과목”이라며 “모두 처음 배우는 분야라서 어느 쪽이 적성에 맞는지 찾기 위해서 모든 과정을 듣는데, 힘들지만 재밌다”고 했다.
김씨와 같은 과정을 배우고 있는 전지만(39)씨는 분식집을 운영하다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았다. “뭘 할까 고민하다, 지인 소개로 왔죠. 가벼운 마음으로 배우고 있는데, 이제 이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전씨는 “도배하는 것과 수리하는 것 자체가 재밌다”며 “지금은 크게 흥미를 느껴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영등포구는 2018년 4월 건축 관련 직업교육 전문기관인 영등포청년건축학교를 설립했다. 청년들에게 건축 관련 기능과 기술을 교육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교육과 취·창업 지원뿐만 아니라 건축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모인 건축전문 인력 공동체도 만들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와 자원을 연계해 공공 일자리 창출도 이뤄내고 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2018년 타일·미장, 도배·바닥재 교육과정을 시작으로 2020년 목공, 도배, 타일, 필름을 함께 배우는 실내건축인테리어 과정을 신설했다. 2021년 청년 집수리 전문 교육과정을 새로 만들었고 방역, 소독, 집정리(수납) 등을 맡는 홈케어와 재활용·새활용 제품을 만드는 친환경 분야 교육도 한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서울에 거주하는 만 39살 이하 청년이면 누구나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창업한 사람도 있고 팀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2020년 77명, 2021년 80명, 2022년 60명이 도배, 타일, 실내인테리어 시공, 집수리 과정 등 교육을 받았다. 이 중 총 39명이 도배와 타일기능사 자격을 취득했고 7팀이 창업하고 48명이 취업했다. 이기승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사무국장은 “10명이 수업을 들으면 8~9명이 수료하고 1년 뒤 그 일을 하는 사람은 3분의1 정도”라며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서 1년을 버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 사무국장은 “교육생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다”며 “올해 수료생 중 7명은 선배가 만든 팀에서 함께 일한다”고 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수료생들은 협동조합을 비롯한 주거관리 관련 전문 회사 7개를 설립해 운영한다. 2020년 우리동네건축협동조합을 시작으로 같은 해 타일 공사를 하는 리더스타일, 2021년 종합인테리어를 하는 휴네트디자인, 집수리하는 페리투스, 부동산과 공간 대여를 하는 레몬큐브, 취약계층 집수리를 맡아 하는 뚝딱수리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올해는 인테리어를 맡아 하는 세컨라이프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청년들이 자격증을 취득해도 현장에서 곧바로 일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 사무국장은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수십 년 동안 현장을 누빈 기술공에 비해 기술력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기술공을 주로 채용해요. 이제 갓 자격증을 취득한 조공(보조기술공)을 채용하기 꺼리지요.”
설사 보조기술공으로 취업해도 업무 환경이 열악해서 버텨내기가 힘들다. 이 사무국장은 “새벽 5시 일을 시작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4대 보험도 안 되는 곳이 많다”며 “그럴바에야 청년들끼리 뭉쳐 사업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지난해 지역 네트워크와 자원을 활용한 ‘우리동네 주거개선관리 플랫폼’(우주관)을 구축했다. 청년들이 중심이 돼 집수리, 홈케어, 친환경사업, 교육서비스 등 지역 내 주거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통합주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주관은 청년들이 만든 주거관리 기업 지원을 비롯해 주거개선이나 관리가 필요한 주민과 기관을 청년 창업 기업과 연결한다. 지난 1일에는 누리집도 개설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는 지역주민을 위한 집수리 봉사에도 앞장선다. 지금까지 취약계층 집수리 지원사업으로 구 내 취약계층 31가구에 방수, 도배, 타일, 단열, 부엌 등을 새로 시공했다. 교육수료생이나 교육 수준에서 지원 가능한 가구를 선정해 해당 분야 전문가와 함께 수리한다. 공사비는 가구당 150만원 이하로 영등포구청에서 지원한다.
지난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4가구에는 방수, 도배, 장판 등을 새로 시공했다. 영등포청년건축학교 수료생들이 창업한 뚝딱수리 협동조합, 우리동네건축협동조합, 세컨라이프, 수강생과 수료생 5명이 힘을 모았다. 집수리 봉사에 참여한 김경아씨는 “주민은 무료로 집수리해서 좋고 청년들은 현장에서 부딪히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해결할 능력을 기를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청년들이 시공을 잘하면 입소문이 날 것으로 생각해요. 10년만 지나면 이들도 베테랑이 되겠죠.” 이 사무국장은 “앞으로 교육생을 10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우주관을 더욱더 발전시켜 영등포구와 함께 청년과 지역주민이 서로에게 도움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영등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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