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2', '와칸다 포에버' 외치게 만드는 진정한 블록버스터
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지난 5월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7월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에 이어 올해 마블의 마지막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블랙 팬서 2')가 9일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세 편 모두 솔로무비 시리즈로 앞서 개봉한 두 편보다 '블랙 팬서 2'에 대한 관객의 기대뿐 아니라 감상도 남다를 것이다. 속편의 의무감에 더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주연배우의 부재에 대한 책임감, 여기에 마블 페이즈 4를 마무리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맡은 '블랙 팬서 2'는 차분하고 의연한 자세로 관객을 맞이한다.
마블스튜디오 최초의 흑인 영웅을 내세운 '블랙 팬서'는 2018년 2월 개봉해 북미 흥행뿐 아니라 한국 장면의 등장으로 국내에서도 53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 의상상, 미술상 3관왕을 차지하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마블의 효자 '블랙 팬서'의 속편 제작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편의 흥행을 이끈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2편 연출을 확정했고, 1편에서 위기와 역경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트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는 과정을 2편에서 보여줄 예정이었다.
2022년 개봉을 발표하고 1편의 주요 배우들이 재출연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채드윅 보스만이 2020년 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2편 제작이 불투명했지만, 마블스튜디오와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트찰라 역에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채드윅 보스만을 CG로 구현하지 않겠다는 용단을 내리고 시나리오를 수정해 2021년 촬영에 돌입한다. 결과적으로 '블랙 팬서 2'는 채드윅 보스만을 기억하는 영화이자 MCU 히어로 세대교체에 운명적으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블랙 팬서의 등장을 알리는 영화다.
'블랙 팬서 2'는 마블 스튜디오 인트로부터 채드윅 보스만을 추모하며 숙연한 분위기로 출발한다. 와칸다의 여왕 라몬다(안젤라 바셋)와 딸 슈리(레테티타 라이트)는 아들이자 오빠인 트찰라의 급작스런 죽음에 이어, 왕의 부재를 틈타 와칸다의 주요 자원 비브라늄을 노리는 강대국의 위협을 받는다. 이들 앞에 비브라늄을 소유한 또 다른 해저 국가 탈로칸의 왕 네이머(테노치 우에르타)가 나타나 협박을 가하고, 장군 오코예(다나이 구리라)와 트찰라의 연인이었던 나키아(루피타 뇽)가 가세해 와칸다 왕국을 지키기 위한 각개전투에 돌입한다.
줄거리에서 짐작하듯, 이번 영화는 트찰라의 죽음 후에 남겨진 이들이 힘을 합치는 이야기다. '와칸다 여성들의 이야기'라 봐도 무방하다. 전편이 아버지 트차카와 아들 트찰라의 관계, 블랙 팬서와 대결하는 음바쿠와 에릭 킬몽거 등 남성 캐릭터의 대결이 중심이었다면, 2편은 전편에서 이미 지도자, 과학자, 군인, 스파이 등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상을 펼친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머니 라몬다와 딸 슈리의 관계가 부각되고, 여성 캐릭터들은 탈로칸 부족에 맞서는 전사들로 변모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는 슈리가 상실을 극복하고 남겨진 자의 몫을 수행하면서 영화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이처럼 '블랙 팬서 2'는 구관을 잘 살리면서 동시에 시리즈에 합류한 새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킨다. 천재 과학자 슈리의 파트너 역할을 맡은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는 아이언맨의 뒤를 잇는 천재 소녀 캐릭터로 직접 만든 아이언하트 슈트를 선보이며 MCU 데뷔전을 치른다. 아이언하트의 본격적인 활약은 2023년 하반기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하는 6부작 솔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
'블랙 팬서 2'의 빌런인 네이머은 발목에 달린 날개로 공중 비행하는 능력이 눈에 띈다. DC 아쿠아맨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데, 영화 데뷔는 늦었으나 코믹스 역사에선 마블 코믹스 초창기인 1939년에 등장한 캐릭터로 1941년에 데뷔한 아쿠아맨보다 선배다. 마블 코믹스의 안티히어로 원조를 모셔온 만큼 빌런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단 통치자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 극중 네이머가 통치하는 해저 국가 탈루칸은 마야와 아즈텍 등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차용해 전편에서 다룬 아프리카 문명에 이어 차별화된 볼거리와 일관된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각 분야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시리즈답게 이번에도 음악, 의상, 미술이 제 몫을 해낸다. 스웨덴 작곡가 루드비히 고란손, 의상 디자이너 루스 E. 카터, 프로덕션 디자이너 한나 비츨러가 그대로 참여해 '블랙 팬서'의 독창적인 세계를 빛낸다. 리아나가 부른 주제가 'Lift Me Up'을 비롯해 이번에도 OST는 '블랙 팬서' 팬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분야가 될 것이다. 촬영도 눈여겨볼 만하다. 1편의 촬영감독 레이첼 모리슨에 이어 2편의 촬영감독을 맡은 오텀 듀랄드는 드라마 '로키' 시리즈(2021)와 영화 '틴 스피릿'(2019)에서 보여준 특유의 감각적인 촬영으로 전편보다 스타일리시한 속편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
제작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가 '블랙 팬서 2'를 일으켜 세웠지만, 아쉬움도 존재한다. 초중반까지 주인공 한 명의 역할을 여러 캐릭터가 나눠 받는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2대 블랙 팬서의 존재를 모르는 관객은 누가 과연 블랙 팬서의 자리를 이어받을지 흥미로우나, 알고 보는 관객에겐 영화가 너무 뜸을 들인다는 인상을 안긴다. 무엇보다 채드윅 보스만이 연기한 블랙 팬서의 존재가 거대한 상징이 된 상황에서 속편을 이끄는 인물들과 새로운 이야기가 전편이 주었던 감흥 이상을 해내는 것이 무리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161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새 없이 흘러가는 데는 성공하지만, 전과 다르게 좀 더 새롭게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 강박감이 느껴진다.
MCU의 30번째 작품 '블랙 팬서 2'는 관객이 어떤 마음을 먹고 극장에 가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영화다. 채드윅 보스먼의 블랙 팬서를 기억하러 간다면 마지막에 '채드윅 보스먼 포에버'를 외치게 될 것이고, 시리즈의 내외적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간다면 '블랙 팬서'의 명대사 '와칸다 포에버'를 다시 한번 외치게 될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예우를 갖춰 주연배우를 추모하고 영화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 '블랙 팬서 2'는 MCU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처럼 현실과 맞닿은 영웅 서사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블랙 팬서'는 다시 돌아온다. 그때까지 여느 시리즈보다 부단히 변화와 도전을 거듭해야 하는 숙명을 보란 듯이 개척해 나가기를 응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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