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를 가다] ①첫 발파 굉음…사우디 100년의 대역사 시작됐다
롯데월드타워 높이의 선형 구조물 총연장 170㎞로 짓는 '더라인' 공사 개시
제2의 두바이 될까…"석유 이후 사우디의 미래…도시건설의 개념 대전환"
(타북[사우디아라비아]=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지난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터널 공사장에서 발파 굉음이 울렸다.
신도시의 뼈대를 이룰 인프라 공사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울림이었다.
첫 공사인 연장 28km 터널 중 12.5km를 맡은 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다.
우리 기업이 제2의 두바이·아부다비를 노리는 네옴시티 공사의 전면에 나선 셈이다. 네옴시티 개발사업은 총사업비 5천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다.
터널공사에 참여하는 현대건설 관계자는 "네옴시티와 관련한 가장 큰 의구심은 과연 실제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거였는데, 마침내 공사가 시작됐다는 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발파 전날인 7일 네옴시티가 들어설 사우디 북서부의 타북 주(州)를 찾았다.
네옴시티로 지정된 구역은 타북주의 2만6천500㎢ 부지. 서울 면적의 44배다.
인구 67만의 타북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타북 시내에서 8784 국도를 따라 자동차로 130km를 더 달려야 네옴 구역이라는 걸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은 광활한 미개발 지역이다.
사람 한 명, 건물 하나 없이 아득한 사막의 절경 사이로 왕복 4차선 도로가 끝없이 뻗어있을 뿐이다. 네옴시티 내 선형도시인 '더라인(The Line)' 공사를 위해 최근 확장한 도로다.
'더라인'은 무한히 계속될 듯한 사막과 협곡, 산악지대를 지나 사우디·이집트·요르단 국경이 한데 모이는 홍해 아카바만(灣)까지 이어진다.
폭 200m, 높이 500m의 선형 구조물을 총연장 170km 길이로 지어 그 안에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한다는 게 사우디의 구상이다.
수평 구조의 전통적 도시를 수직 구조로 재구성해 위로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개발 면적을 줄이겠다는 시도다.
롯데월드타워(555m)만 한 높이의 빌딩이 서울부터 강릉까지 일직선으로 빽빽하게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도로도, 차도, 탄소배출도 없는 100% 재생에너지로 돌아가는 도시가 목표다. 물은 담수화 플랜트에서 공급받는다.
'더라인'의 주요 교통수단은 건물 지하에 깔리는 철도다.
2개 터널을 뚫어 한 곳에선 시속 250∼300km의 고속철도와 지하철이 사람을 실어나르고, 나머지 한 곳에선 화물 운반용 철도가 운행된다.
먼저 터널 공사부터 하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게 된다.
깊이 최소 20m, 폭 50m의 큐브 모양으로 땅을 판 뒤 터널을 만들어야 하기에 매일 3천여 대의 트럭이 드나들며 흙을 퍼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네옴시티로 향하는 도로를 오가는 차량 대부분은 덤프트럭과 레미콘차였다. 국도를 빠져나가 분주히 공사용 도로로 향했다.
터널 공사 현장 인근엔 콘크리트 배합시설 20곳이 집적해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서울 서부간선도로를 놓을 때 콘크리트 배합시설 2개를 썼는데, 여기에 현재 20여 개가 몰려있고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걸 보면 '더라인'의 공사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사 인력이 머무를 수 있는 커뮤니티 단지도 5만명 수용을 목표로 규모를 불려 나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더라인' 공사의 특징은 속도전이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100만명, 궁극적으론 900만명을 거주시키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터널 공사 공기는 43개월에 불과하다. 2025년 말까지 공사를 마쳐야 한다.
여기서 한국 기업이 빛을 발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기를 맞추며 발주처의 신뢰를 쌓아온 역사가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우리 기업의 강점은 공사 기간이 짧더라도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며 프로젝트를 마친 경험을 축적했다는 것"이라며 "더라인 터널은 인력 3천명과 장비 350대를 동시다발적으로 투입해 주야 2교대로 작업을 해야 공기를 맞출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그리스 아키로돈과 컨소시엄을 이뤄 '더라인' 중간 부분인 산악지역 동쪽에서 터널을 파 내려가고, 반대편 서쪽 공사는 스페인 FCC와 중국 국영 건설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 컨소시엄이 맡았다. 서로 경쟁하며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수주를 노리는 구조다.
추가 발주될 터널 규모는 130km 이상이고, 내륙 쪽 '더라인' 끝자락에는 네옴시티 국제공항이 건설될 예정이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공사 발주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 각국의 내로라 하는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추가 수주를 준비 중이다.
네옴시티가 조용히 천지개벽을 준비하고 있다면 리야드에 세워진 '더라인' 전시장에선 사우디가 꿈꾸는 미래를 화려하게 제시하고 있다.
집 밖을 나서면 바로 광활한 자연이 펼쳐지고,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사무실, 상점, 병원, 학교, 문화시설, 스포츠 경기장 등 필요한 모든 것이 있는 도시. 자율주행 교통수단부터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등 현존하는 모든 신기술이 집약된 미래 도시다.
발파식이 있었던 지난 8일 전시장을 둘러본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사우디 왕가의 100년 프로젝트이자 석유 이후 사우디의 미래"라며 "도시 건설의 개념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지 진출을 모색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네옴시티는 살아남기 위한 사우디의 몸부림"이라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디테일이 없는 상태에서 화려한 그림만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꿈을 담대하다고 치켜세우는 이도 있고 허황되다고 평하는 이도 있는 상황이다.
분명한 건 이제 공사는 막 시작됐다는 점이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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