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생존자 "'유감스럽다'는 말 듣기 싫다"

윤혜주 2022. 11. 1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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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직접 출연, 얼굴·실명 공개…"구체적 사과 필요"
"시스템 문제 아니라 판단하는 사람의 생각이 중요"
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에서 생존한 김초롱 씨가 정치권에서 나온 '유감스럽다'는 사과에 대해 "듣기 싫다. 애매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며 '무엇'을 잘못했는지 등 사과가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국가 시스템 의사 결정권자가 이태원에서 노는 것 자체를 중요한 사안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따라 사고 발생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내놨습니다.

오늘(10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통해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33살 김초롱 씨는 '정부 참사 대응에서 충격적이거나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나라가 진짜로 시스템이 붕괴된 나라인가"라고 반문하며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고 운을 뗐습니다.

김 씨는 "CCTV도 굉장히 많고 문자로 112에 신고하면 몇 초 만에 답장이 오고 1분 이내로 출동하는 경찰들도 있다.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위에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김 씨는 "솔직히 말해서 이태원에서 노는 것 자체를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원래도 노는 거고, 파티이니까 거기서 얼마나 큰 사고가 일어날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요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어디를 가는 지에 대해 관심이 없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놀다가 이런 사고가 난 거니까,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니 이상한 사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제대로 (상황을) 인지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공감을 하고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었다면 '요즘 애들이 여기에(핼러윈 데이) 그렇게 열광한대. 그러면 사람이 많이 모이겠지. 여기 좀 신경 써봐' 이렇게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다면 '우리가 더 신경을 못 썼기 때문에 사고가 났구나. 죄송하다'는 사과가 자연스럽게 나올텐데, 그걸 모르니까 '조사하고 더 밝혀지면 (사과하겠다)'는 답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초롱 씨 / 사진 = CBS라디오 캡처

앞서 김 씨가 지난달 29일 참사 현장 근처인 '메인 도로'에 진입한 건 저녁 9시 20분쯤이었습니다.

26살부터 33살이 된 올해까지 매년 핼러윈에 이태원 방문을 했던 김 씨는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원래 인파가 몰린 후 풀렸으니까 익숙했다면서 골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김 씨는 점점 압박감이 심해졌고, 발이 땅에 안 닿기도 하고, 숨이 좀 안 쉬어진다는 느낌도 받았다며 같이 갔던 친구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김 씨 옆에 있던 사람이 술집 벽으로 밀어줬고, 술집 사장이 문을 열어 몇 명을 가게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김 씨는 가게 안에서 잠시 숨을 돌렸고 10시 30분에서 40분 사이 가게를 나와 반대 방향을 향해 걸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한 인파에 1m 이동하는 데 10분이 걸렸다는 게 김 씨가 전한 상황입니다.

그러던 중 옆 가게 문 앞에서 헤어진 친구를 발견한 김 씨는 "친구면 들어오라"는 식당 사장의 배려로 또 한 번 가게로 대피했고, 새벽 1시까지 해당 가게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김 씨 앞에는 "차라리 영화 촬영이라고 하면 믿겠다" 싶을 만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김 씨는 "길바닥에 사람들이 누워 있는 광경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도 많이 나니까 계속 멍했던 것 같다"며 "괜찮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그냥 이유 없이 갑자기 또 다운된다. 자꾸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김 씨는 한국심리학회를 통해 무료 전화 상담을 받았다면서 "놀러 가서 유흥을 즐기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가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위안을 받았다"며 "생각보다 국가가 지켜주는 부분이 많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언제든지 많은 분들이 많이 이용하셨으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한편, 김 씨는 지난 2일부터 이태원 참사 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담일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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