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길목’ 헤르손 내준 푸틴... 젤렌스키가 신중한 이유
친(親)정부 러시아 블로거들 “1991년 소련 해체 이래 최대의 지정학적 실패” 비판도
세르게이 K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9일 러시아 국영 TV로 방영된 회의에서 세르게이 수로비킨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으로부터 “헤르손에 계속 군(軍)물자를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합리적 선택은 드니프로(러시아 드네프르) 강을 따라 동쪽에 방어선을 구축해야 러시아군의 희생을 줄이고 전투 태세도 유지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병력과 무기의 안전한 도하(渡河) 조치를 취하며 계획대로 철수하라”고 말했다. 드니프로 강은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주의 주도(州都)인 헤르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강이다.
헤르손은 러시아군이 2월24일 침공을 시작하면서, 크림 반도에서 치고 올라가 전쟁 초기인 3월2일에 장악한 우크라이나 남부 최대 도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월30일 다 점령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러시아 영토’라고 발표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州)와 크림 반도를 잇는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이런 중요성 탓에, 지난 9월23일 러시아군 사령관들이 ‘헤르손 철수’ 요청을 했지만, 푸틴이 거절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군은 이 도시를 수복(收復)하려면 막대한 유혈 도심 전투를 치러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최고 기획자인 푸틴은 이날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9개월 전쟁서 러시아가 빼앗은 최대 요충지
러시아군의 철수 명령은 우크라이나를 남북으로 가르는 드니프로 강에서 러시아군이 유일하게 강 서쪽에 장악하고 있던 핵심 도시이자, 강 동쪽으로 진격할 교두보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헤르손의 중요성은 지도를 보면 드러난다. 헤르손이 속한 헤르손 주와 자포리자,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우크라이나의 이 동남부 4개 주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 반도를 잇는 ‘육교(陸橋)’다.
러시아로선 헤르손 주 전체를 잃으면, 크림 반도는 전쟁 전처럼 육지와의 연결 고리가 없어진다. 푸틴은 이 고립을 막으려고, 2018년에 40억 달러를 들여서 크림 반도의 동쪽과 러시아를 잇는 다리를 건설했다. 이 다리는 지난달 8일 우크라이나 군의 작전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일부 파괴됐다.
현재 반격에 나서 크림 반도 수복까지 목표로 삼은 우크라이나에게도 헤르손은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관문(關門) 도시다. 헤르손에서 크림 반도까지는 소련 시절에 건설된 운하가 연결돼, 드니프로 강물을 공급한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자 이 운하를 막았고, 러시아는 지난 2월 침공 이후 이 운하를 재개했다.
러시아가 또 “우크라이나군이 댐을 폭파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던 높이 30m의 노바 카호우카 수력 댐도 헤르손 주에 있다. 우크라이나군과 서방에선 러시아의 이러한 주장이 “앞으로 러시아군이 댐을 폭파하고 우크라이나군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기만 작전”이라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도심 전투로 유인, 매복하려는 덫일 수도” 신중
러시아군의 ‘헤르손 철수’ 발표는 우크라이나로서도 점차 ‘피로증’을 느끼는 서방에 “군사 지원은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확신을 줄 수 있는 뉴스다. 11월 초부터 헤르손 시내의 관공서에 러시아 국기가 게양되지 않고, 검문소들이 방치되는 등 철수의 조짐도 계속 목격됐다. 우크라이나군의 도하를 막기 위한 교량 파괴도 확인이 됐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국방장관의 발표가 있은 뒤에 “적(敵)은 선물을 주지 않으며, 이건 선의(善意)의 제스처도 아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매우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과 러시아군의 발표에는 워낙 거짓이 많아, 수집되는 신뢰할 만한 정보에 따라서만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의회의 군사ㆍ정보위원장 로만 코스텐코는 “우크라이나 군을 도심 전투로 유인하려는 덫일 수도 있다”며 “일부 병력이 도심에 남아 있다는 정보도 있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러시아군이 매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철수 명령’에 대해, 푸틴의 심복들은 “용감하고 현명한 결정” “책임 있는 자세”라고 추켜세우며 ‘내부 총질’을 단속했다. 그러나 한 친(親)정부 러시아 평론가는 텔레그램에 “중요한 전쟁 수행 결정이 늘 지연되면서,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가 겪은 최대의 지정학적 패배”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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