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경기 둔화로 내년 韓 경제 1.8% 성장”…성장률 전망치, 사상 첫 1%대 추락
“수출·투자 부진하며 경기 둔화 국면 머무를 것”
소비자물가는 3.2%…”계속 물가안정목표 상회”
“외국 인력 적극 수용해 노동 공급 축소 막아야”
“긴축 기조 유지…금리 인상 속도는 조절 필요”
“금융시장 불안해…필요시 신용경색 정책 개입”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 성장률을 1.8%로 내다봤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7%에서 0.9%P(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올해까지는 잠재 성장률 이상의 성장세를 유지한 한국 경제가 내년부터는 급격한 하강 국면으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게 KDI의 전망이다.
KDI가 매년 하반기에 발표하는 경제전망에서 다음 연도 성장률을 1%대로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때도 KDI는 2~3%대 성장률 전망을 유지했었다.
KDI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경쟁력이 흔들리고, 높은 소비자물가와 시장금리가 내수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경기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성장 전망치를 새해 들어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1.8이라는 수치도 경기 흐름에 따라 내년에 더 내려갈 수 있다.
KDI는 높은 물가 상승세를 고려해 거시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하는 가운데 금융 건전성 강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녹록지 않은 경기 상황인 만큼 긴축 속도와 강도는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또 KDI는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위축을 완화하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도 요구된다고 했다.
◇ “수출·투자 위축…美 긴축 가속화 지속하면 더 위험”
KDI는 1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8%로 예상했다. KDI가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이듬해 성장률을 1%대로 내다본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직전까지 가장 낮은 성장률 전망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의 2.3%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에도 KDI는 2009년 성장률을 3.3%로 관측했다.
KDI는 수출 증가세 둔화와 투자 위축 등을 성장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KDI는 “2023년 우리 경제는 2% 내외로 추정되는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성장세를 보이면서 경기 둔화 국면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소비의 양호한 회복세가 이어지겠으나,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금리 상승으로 수출과 투자는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민간소비도 서비스 소비는 회복되겠으나 고(高)물가에 따른 실질구매력 저하와 시장금리 상승으로 재화소비는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KDI는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이 올해(4.7%)보다 낮은 3.1%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2022년(-3.7%)에 이어 내년에도 0.7%의 낮은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건설투자 역시 주택시장 부진과 자금조달 여건 악화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은 서비스 수출 회복에도 불구하고 상품 수출이 쪼그라들어 1.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상품 수출은 글로벌 수요 감소의 충격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이 흔들리며 1.0%의 낮은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KDI는 “내년 경상수지는 서비스수지 적자 폭이 커지면서 올해(230억달러)보다 흑자 폭이 축소된 160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KDI는 2023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2%로 제시했다. KDI는 “국제유가가 안정되면서 물가 상승 폭은 축소되겠으나 여전히 물가안정목표(2%)를 웃돌 것”이라고 했다. 또 취업자 수는 내년에도 양호한 고용 여건을 유지하겠지만, 기저효과와 고령화로 2022년(79만명)보다 크게 축소된 8만명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가 계속되거나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더 크게 침체될 때,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발생할 때 등은 우리 경제를 더 크게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KDI는 이런 악재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성장률이 더 추락할 수 있다고 했다. KDI는 2019년 하반기에 2020년 성장률을 2.3%로 제시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실제 성장률은 -0.7%까지 떨어진 바 있다.
◇ “건전재정 확립…금리 인상 속도는 조절해야”
KDI는 내년에 쉽지 않은 경기 흐름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2023년 예산안을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짠 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재정 구조를 신축적으로 조정해 재정 여력을 확보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KDI는 “인구 구조 변화로 재정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재정 수요가 오히려 축소되는 부문은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KDI는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 경제 성장세가 약화하고 있다”며 “노동 공급 축소를 완화하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KDI는 경제활동 참가가 저조한 여성과 급증하는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여건 마련, 외국인력 적극 수용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또 대외 개방과 규제 합리화 등의 제도 개혁도 병행할 것을 주문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되, 경기 둔화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 금리 인상 속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KDI는 “작년 4분기부터 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큰 폭으로 상회하고 있어 통화정책 대응이 요구되지만, 향후 경기가 지나치게 위축될 수 있는 만큼 기준금리는 완만한 속도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지난 7월과 10월 단행한 빅스텝(0.5%P)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이다.
이어 KDI는 “자유변동환율제도 취지에 부합하게 환율 변동을 용인하고 물가·경기·금융시스템 등 국내 거시경제 안정을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외화자금시장이 불안정해질 경우 환율 상승 등 표면적인 증상에 직접 대응하기보다 금융기관의 일시적인 외화 유동성 경색이 금융시스템 위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채권시장에서 자금 공급이 빠르게 줄어 일시적 경색이 발생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만큼 금융정책 분야에서는 부실 자산을 정리하며 금융 건전성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했다.
KDI는 “일부 자산의 부실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을 경우에 한해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며 “금리 급등에 따른 취약가구와 영세자영업자의 차환 위험에 대비해 법정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경기 둔화에 대비해 취약차주 보호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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