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경찰 전면 개혁 않으면 참사 또 부른다

2022. 11. 1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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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CCTV 보고도 선제 대응 실패

사고 발생 뒤 지휘체계도 엉망

심각한 구조적 결함 해결해야

경찰의 ‘소극 행정’ 갈수록 심해

승진 차별과 불만도 심각 수준

정권 취향 따른 인사로 더 악화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축제 압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156명의 희생자에 대한 일주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이 끝나자, 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원인 규명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고 전후 경찰의 구체적인 대응 과정이 공개되면서, 경찰의 행보를 둘러싼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났다. 압사 사고 위험이 명백한 상황인데도 경찰은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이후에도 경찰의 지휘 체계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사를 통한 직접적인 책임 소재 규명과 함께, 경찰 조직의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사고의 위험을 예방해야만 한다.

이번 사고가 주최자 없는 자연 발생적 행사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사전 회의에서 경찰과 용산구청은 다양한 핼러윈 행사가 열리는 이태원 지역에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당일 인파 추세에 대해서도 경찰은 CCTV를 통해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더욱이 사고 당일에는 이태원 지역에 배치된 경찰이 인파로 인한 사고의 위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고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는데도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일선 경찰관들은 위기 경보를 울리지 않았고, 이에 따라 경찰은 선제 대응에 실패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고 당일 오후 6시 이후부터 112상황실에 사고 신고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도 경찰은 형식적 출동 외에 적극적인 위기 대응 조치를 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부터라도 가용 경찰력을 현장에 동원해 조치했더라면 이번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은 위기 상황에서 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경찰 조직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일선 경찰관의 소극적인 업무 수행 태도를 꼽을 수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시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소개(疏開)하는 등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참사 때 일선 경찰관은 필요한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못했다.

한편, 경찰의 소극행정은 이미 수년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2019∼2020년 중 ‘소극행정 신고센터’에 접수된 소극행정 민원 가운데 경찰청 업무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의 소극적인 태도를 단순히 개인적 행태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일선 경찰관의 이러한 태도는 경찰의 조직 문화와 깊이 연관돼 있다. 일선 경찰관의 적극적인 행동은 경찰의 위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불가피하게 위축된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경찰력을 행사하는 경찰 조직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다수의 대형 사고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일선 조직과 경찰관에게 자율성을 줘야 한다.

둘째, 경찰관들의 인사 행정에 대한 공정성 인식이 낮아, 경찰관의 적극적 업무 수행 동기를 저해한다. 경찰관에게 승진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른 행정 조직에 비해 상위직이 급격히 감소하는 첨탑형 구조를 가진 경찰 조직의 경우 승진이 더욱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승진이 어려운 경찰 조직에서 경찰대학, 고시 특채, 간부후보, 순경 공채 등 다양한 입직 경로에 따라 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경찰 내부에 만연해 있다. 승진에 대한 잡음과 불만이 있는 상황에서, 적극 행정에 관한 경찰관의 동기가 약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특정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승진에서 혜택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경찰 조직의 인사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더욱 추락했으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마저도 계속 훼손됐다. 조직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추락함에 따라 정권교체기의 변동 상황에서 조직의 기강이 해이해졌고, 경찰 조직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용산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 상황실장 등 경찰 지휘관들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경찰 조직에 대한 개혁을 통해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또 다른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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