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의 툴툴대는 귀차니즘은 어째서 공감을 불러일으킬까('유퀴즈')
[엔터미디어=정덕현]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오후에 굳이 촬영을 잡은 이유로 유재석은 "이서진씨가 아침 잠이 많다고 해서"라고 말했지만, 이에 대해 이서진은 특별히 부정하지 않고 웃으며 인정했다. 조세호가 "이게 사실이냐"고 재차 묻자 "사실이에요"라고 확인해줬고, "혹시 끝내 드려야 하는 시간도 있습니까?"라고 조세호가 묻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빨리 끝나면 좋죠"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이 짧은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이서진은 한 마디로 말하면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귀찮으면 귀찮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 가장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아닌가. 하지만 방송이고, 카메라가 드리워져 있으면 대부분은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서진은 다르다. 그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밉지가 않다. 대신 그 귀찮음과 싫음을 공감시킨다. 누구나 다 그렇지 않느냐고.
오렌지족 출신이고 자산이 600억이 넘으며 가사 도우미만 6명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대해서 물어볼 때도 이서진은 대부분 웃어넘겼다. 오렌지족은 들어보긴 했어도 본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고, 자산이 600억이면 "여기에 앉아 있지도 않는다"고 했다. 또 가사 도우미가 6명이라는 이야기는 할아버지 때 이야기고 그때부터 지금껏 집이 몰락하는 바람에 "지금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저 툭툭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너무 자연스럽고 진심이 담겨 있는데 또 파격적이기도 해서 시청자들은 웃음이 터진다. 배우가 되려고 했을 때 집에서의 반응은 어땠냐는 질문에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저 새끼가 지가 최민수인 줄 아냐?"라고 말해 유재석을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초창기 배우시절에는 욕도 많이 듣고 심지어 술 먹다 신발을 던진 사람도 있었다는 이서진은 그러나 그런 과정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때 신발을 던진 분이 너무 고맙다며 그 분이 뒤에서 그에 대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명절이면 꼭 그 분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고.
또한 이서진은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걸 순순히 인정하는 쪽이다. 한지민이 <유퀴즈>에 나왔을 때 "나에게 이산은 이서진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에 이서진은 의외로 "나에게 이산은 이준호입니다"라고 말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자신의 '이산'은 15년도 지난 그 때 이산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한지민과 스스럼없이 장난도 많이 치고 지낸다는 이서진은 "나이 먹고 힘 빠지고 하니까 지민이한테 많이 밀린다"고 말했다.
그는 훈훈한 미담에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솔직한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으로 다소 과잉된 훈훈함이 주는 불편함을 넘어서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산>이 연장을 하게 될 때 조단역 임금 현실화와 스태프 포상휴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미담에 대해 이서진은 "맞긴 맞는데요, 너무 연장하기가 싫었어요"라고 솔직한 당시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너무 하기 싫어서 이런 조건이면 안 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들어줘서 미담이 됐다는 것.
스태프에게 빼빼로를 챙겨주며 "가질래?"라고 묻기도 했다는 이서진의 무심히 챙겨주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그는 그게 시대가 바뀌어서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가질래?"라고 물으면 "내가 그지냐?"라고 답했던 것이 지금은 '무심히 챙겨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신에 대한 상찬을 자신의 미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시대 변화로 말하며 누구나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 있는 것.
나영석 PD의 페르소나가 되어 오랫동안 여러 여행 예능을 함께 해온 이서진은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 자꾸 자기를 세워놓는 바람에 <꽃보다 할배>를 할 때만 해도 방송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어르신들을 챙기는데만 신경 쓰게 됐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이서진의 진면목을 끄집어내게 만든 이유가 됐다.
둘 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들을 하면서 나영석 PD와 이서진은 일종의 동반자 같은 관계가 생겼다. 프로그램이 잘 될지 안 될지 둘 다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바로 그런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프로그램에는 엄청난 시너지로 발휘됐던 것. 그래서인지 이서진에 대해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한 나영석 PD의 답변도 어딘가 이서진의 말투를 닮아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좋은 형이다' 이런 생각이 들죠." "뭐 살짝 존경한다.. 근데 아주 많이는 아니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유퀴즈>가 보여준 이서진의 매력은 무언가를 애써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데서 나오고 있었다. 힘들면 힘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 그건 어쩌면 그런 말들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통쾌한 인지상정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이서진이 보여주는 하기 싫은 걸 먼저 인정하고 그럼에도 인간적인 정 때문에 투덜대며 그 하기 싫은 것도 하는 '귀차니스트'의 면면은 그래서 더더욱 훈훈한 공감을 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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