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말…정책결정자의 말이 ‘안전’과 ‘재난’을 가른다[왜 또 참사인가]

허진무·전지현 기자 2022. 11. 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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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인근 압사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가의 정책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서도 지난 1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라”고 했다. 경찰과 용산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여서 규정이나 매뉴얼이 없었다’고, 대통령실은 “집회나 시위가 아닌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 경찰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변명했다. 국가가 시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야 할 법과 원칙이 없었다’는 이유를 댄 것이다.

뒤늦게 대통령실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경찰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 제도가 미비해 대응을 못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냐”며 질타했다고 공개했다. 이 발언을 두고도 책임을 경찰에게 떠넘기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지적이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윤 대통령이 원자력발전과 관련해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상기시켰다. 이런 태도가 ‘안전에 무관심한 국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런 태도가) 이태원 참사와 직접 연결되는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참사가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의 핵심”이라며 “정책 결정자의 태도나 지향은 안전이나 재해 예방의 행정과정 자체를 변경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AI 재난예방’한다더니…재난문자도 늑장 발송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디지털 국가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재난안전 신고와 정보를 통합 처리하고 예방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막상 재난이 닥치자 첨단 기술은커녕 기본적인 재난 문자메시지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8월8일 수도권에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9명이 숨졌다. 차량 1만여대가 침수되고 피해액은 1000억원이 넘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방에선 일가족 3명이 쏟아지는 빗물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서울시는 오후 9시19분 ‘저지대 침수구역 대피’ 재난문자를, 관악구는 오후 9시21분 ‘도림천 범람 우려’ 재난문자를 발송했지만 저지대 주택들이 침수된 뒤였다. 위험에 빠진 신림동 일가족을 구조해달라는 신고가 오후 8시59분부터 경찰에 8건 접수됐지만 경찰은 30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9일 일가족 사망 현장을 찾아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됐는가 모르겠네”라며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시내가 침수되는 상황을 보고서도 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로 가지 않고 서초구 자택으로 퇴근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재난 대응을 지시했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재택 근무’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을 안하냐. 대통령이 계신 곳이 바로 상황실”이라고 말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달인 9월에는 태풍 ‘힌남노’가 경북 지역을 강타해 11명이 숨졌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는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철야 근무하고 포항·경주시를 재난특별지역으로 지정했다. 윤 대통령은 9월10일 “국민 안전에 대해 국가는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도 재난 문자메시지는 여지없이 늦었다. 서울시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56분에야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긴급사고로 현재 교통통제 중. 차량 우회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처음 보냈다. 경찰에 최초 112신고가 접수되고 약 6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태원동 일대에 몰려든 인파와 차량 때문에 소방당국의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지난밤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인력 감축하며 안전도 감축

윤석열 정부는 예산 절감을 위해 공공분야 인력을 대규모 감축하는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지침’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방만하게 운영돼온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고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안전과 직결된 예산과 인력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8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 노동자 1명이 경기 고양시의 도로 맨홀 안에서 열수송관 점검을 하다 차량에 치여 다쳤다. 노조는 교통 통제와 안전한 작업을 위해 사측에 ‘도로점용허가’를 신청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역난방안전은 2018년 12월4일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로 1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설립한 안전관리 전담 자회사이다. 지역난방안전은 지난 7월 열수송관 안전 점검 횟수를 줄여 점검인력을 175명에서 141명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의 ‘인력 감축’ 지시에 공공기관들은 잇달아 안전 업무를 축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전력공사는 ‘고압검침’ ‘전력량계 시험’ ‘전력설비 방호’ 등의 안전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해 64명을 줄인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석유가스(LPG) 대중이용시설 검사 기간을 연 2회에서 1회로 축소하고 저장능력 250㎏ 미만인 지하실을 검사 대상에서 제외해 37.5명을 줄인다. 한국전기한전공사는 ‘도심지 전기안전관리대행’ 업무에서 398명을 줄인다.

올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5일 경기 의왕시 오봉역에서 차량 정리 작업을 하던 직원 1명이 열차에 치여 숨졌다. 다음날인 6일에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해 승객 34명이 다쳤다. 한국철도노조는 인력 부족을 오봉역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사고 원인이 아니라 높은 업무강도나 개인의 피로 등 다양한 배후 원인의 결과”라는 것이다.

안전 중시가 ‘관료적 사고’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찾아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완화를 주장해왔다. 이 법은 사고 책임자를 처벌해 산재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산업재해에 대한 공약은 ‘소규모 사업장이나 건설현장에 산재예방 기술과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대형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수사와 처벌을 강조하면서도 산재에 대해선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국민 산재보험을 공약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중대재해법 강화를 공약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비해 산재 관련 공약이 훨씬 적었다.

산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드러난 장면이 있다. 지난해 12월1일 경기 안양시에서 도로포장 공사를 하던 노동자 3명이 바닥 다짐용 롤러에 깔려 숨졌다.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다음날 사망 현장을 방문해 “(노동자가) 시동장치를 끄고 내리기만 했어도… 간단한 실수 하나가 정말 엄청나게 비참한 사고를 초래했다”며 “이건 그냥 본인이 다친 것이고, 기본적인 수칙을 안 지켜서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중대재해법 완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사고 당일에는 충남북부상공회의소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중대재해처을 두고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합리적으로 설계해 기업 하시는 데 걱정이 없도록 하고,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춰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원전 최강국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원전 규제를 풀고 안전 기준을 낮춰 원전 일감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2일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지금 원전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며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해 8월5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원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니 기본적으로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고 했다. 2011년 3월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발생한 대규모 방사능 유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물론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 측은 인터뷰가 보도되자 발언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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