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권대영·이복현 [금융당국 24시]
[편집자주] 자유시장경제 근간인 금융과 관할 당국에 관한 이야기
한국 캐피탈 마켓의 한 축인 채권 시장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직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발 우발채무가 산적해 있지만 일단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이슈가 민관의 노력으로 극복됐다는 게 중요하다. 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지만 그에 대응할 방어체계가 있냐 없냐는 것이 일부분 증명된 셈이다.
김진태 강원지사발 소버린 리스크(sovereign risk, 정부 부도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민간의 아이디어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강원도라는 지방정부의 채무상환 거절이 중앙정부 신뢰도까지 추락시킬 위기를 불러오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간 증권사 사장들을 사석에 불러모았고 시장 우려와 리스크 전이 상황을 보고받았다. 추 부총리는 금융위원회 재직 시절 민간 IB 부문장들과 두텁게 교류하던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게 바로 '조기상환 제안'이다.
따지고 보면 김 지사가 입 밖으로 꺼낸 채무보증 거절 이슈는 강원도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지방정부 수장의 구두 발언 무게는 공식 비공식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난 입장에서는 그런 정치적 실언을 합리적으로 거둬들일 명분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민간이 제안한 조기상환 아이디어는 이미 부도위기에 빠졌던 레고랜드 채권자들을 안심시키면서 김 지사의 발언을 실리적으로 번복할 카운터 어택이 됐다. 당초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보증한 채무 2050억원을 미상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환일을 당초 예정보다 한 달 앞당긴 12월 중순으로 전액 변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살얼음판을 걷던 채권시장에서 강원도가 내건 이 제안은 일각에서 비하하는 것처럼 '고작 한 달'의 의미가 아니다. 우선 한 치 앞을 예상치 못하던 채권 투자자들에겐 부도난 수표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상환시기가 연내라는 것이 큰 메리트다. 만약 상환을 한다고 해도 그 시기가 해를 넘길 경우 투자자 법인들의 재무제표에는 기한이익을 상실한 부실채권(NPL)으로 적힐 수 있어서다. 채권 담당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해당 법인에서 문책받을 구실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셈이다.
흥국생명 이슈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멀어졌던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의 팀 플레이가 빛이 났다. 영구채란 게 법적으로는 5년 내 상환하지 않더라도 채무자가 스텝업(Step up) 이자를 감당하기만 하면 불법이 아닌 게 문제였다. 흥국생명의 의사를 사전에 감지한 당국도 이런 애매모호한 문제로 인해 민간 금융사의 결정에 사전개입을 하기가 어려웠다.
당국은 이 때문에 플랜A와 플랜B를 마련했다. 첫째는 흥국생명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고 시장반응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레고랜드 이슈로 시장에 긴장감이 만연한 상황이었지만 호주 등의 사례에서처럼 시장 소화력이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자원부국인 호주와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은 달랐다. 레고랜드가 불러온 소버린 리스크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이 예상보다 신용 위험도에 있어 취약하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 올 초부터 이어진 경상적자와 주력 수출제품인 반도체 등의 피크아웃 우려까지 심리적인 악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플랜B를 실행하는데 있어 가장 주효했던 것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협업이다. 당국의 감독권은 RBC(지급여력비율) 유지 여부에만 맞춰져 있어 영구채를 조기상환하지 않는 게 개별 금융사에는 감독 적합성에 부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경우 흥국생명의 개별 행위가 한국기업 전체의 외채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트리거가 될 수 있었다.
플랜B는 금융위가 짜고, 금감원이 실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금융위에서 상반기까지 금융정책국장을 맡았던 권대영 상임위원이 발제한 아이디어가 금감원을 거쳐 흥국생명과 대주주 태광그룹에 전달됐다. 여기서 총대를 멘 이는 이복현 금감원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독대가 가능한 '실세' 이 원장은 5년 만에 이례적인 외신기자 간담회를 열어 경고장을 날렸다.
이 원장은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지나친 수익성 일변도의 영업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흥국생명 문제와 관련해선 "자금 여력을 고려할 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발언은 전문경영인이 아닌 그룹 오너에 직접 닿았다. 당초 이슈를 간과하고 있던 태광그룹과 이호진 회장이 문제를 '모럴 헤저드' 가능성으로 받아들여 즉각 대주주 증자와 자본확충, 채무상환으로 풀어낸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룰라 김지현 "남편, 아들만 둘인 '이혼남'…내가 먼저 고백" 왜? - 머니투데이
- 테이, 백종원 추천으로 햄버거 팔아 '연매출 10억'…"사업 확장 예정" - 머니투데이
- 이서진 "집 몰락했다"…'자산 600억·가사도우미 6명' 재벌설 해명 - 머니투데이
- "월급은 거들 뿐"…나는 솔로 11기에 의사·금수저까지, 재력은? - 머니투데이
- 전수경 "미국인 남편 덕에 호텔서 신혼생활…뷔페·헬스장 다 누려" - 머니투데이
- "37억 집도 해줬는데 외도에 공금 유용까지"…트리플스타 이혼 전말 - 머니투데이
- 게스트 태도에 화나 '녹화 중단시킨' 유명 MC…정형돈 목격담 - 머니투데이
- 젤렌스키 "북한군과 며칠 내 교전 예상…韓 방공시스템 원해" - 머니투데이
- 삼성전자 "HBM 파운드리, 자사 아닌 경쟁사에 맡길 수 있다" - 머니투데이
- 최윤범의 유증 승부수…하루만에 경영권 분쟁 '최대변수'로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