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경제難 속 우크라 難민까지… 難감해진 유럽

손우성 기자 2022. 11. 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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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독일 베를린으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한 기차역에서 독일 정부가 제공한 음식과 구호품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출신 등 난민 92명이 지난달 14일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 국경지대인 에브로스강 근처에서 나체로 발견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노티스 미타라치 그리스 이민국 장관 트위터

■ Global Focus - 해결책 못찾는 유럽 난민

튀르키예 통해 그리스 입국

92명의 ‘중동 알몸 난민’ 에

앙숙이던 양국 갈등 최고조

伊, 표류 난민 구조선 방치

英, 르완다 난민 추방 곤욕

리더國도 철저한 자국 우선

러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40만명이 유럽 각국 피신

“난민수용 시스템 한계 도달”

동절기 에너지난 위기 고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對) 러시아 단일대오를 구축하던 유럽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치솟는 물가와 에너지 대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못지않게 유럽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이슈, 바로 난민 문제다. 오랜 기간 유럽 정상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중동·아프리카 난민뿐 아니라 러시아 폭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는 난민 문제를 놓고 둘도 없는 원수가 됐고, 극우 세력이 집권한 이탈리아 등에선 반난민 정서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전망은 더욱 어둡다. 외들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는 물론 유럽 각국의 사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새로운 뇌관이 된 셈이다. 생존을 위해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의 희생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한다.

◇‘앙숙’ 그리스-튀르키예 갈등…죽어가는 난민들 = 지난달 14일 공개된 사진 한 장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아프가니스탄·시리아·파키스탄 출신 난민 92명이 그리스와 튀르키예 국경지대인 에브로스강 근처에서 나체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튀르키예가 이민자들의 옷을 벗겨 강제로 그리스에 보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P통신 등에 따르면 난민들도 그리스 경찰 조사에서 비슷한 취지로 증언했다. 이에 튀르키예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하며 “오히려 그리스가 난민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일명 ‘알몸 난민 파문’은 양국의 불법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8월엔 시리아 국적 5세 소녀가 튀르키예 무인도에 방치됐다가 전갈에 물려 사망했다.

튀르키예는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난민들이 주로 튀르키예를 통해 그리스 입국을 시도하다 보니 양국의 신경전이 거셀 수밖에 없다. 특히 2015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으로 100만여 명의 난민이 쏟아지자 이들을 내보내려는 튀르키예와 막으려는 그리스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EU는 결국 튀르키예에 60억 유로(약 8조40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고, 그 대가로 튀르키예는 난민 수용을 약속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2020년 “지원금이 부족하다”며 국경을 개방해버렸다. 그리스는 국경에 40㎞ 장벽을 설치하며 맞대응했다.

표면적인 갈등 이유는 튀르키예의 변심에 있지만, 이면엔 양국의 경제 위기와 역사 분쟁이 깔려 있다는 시각이 다수다. 튀르키예의 10월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85% 치솟았다. 1997년 이후 25년 만의 최고치였다. 그리스 경제는 2010년 금융 위기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모두 난민을 수용할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경제난의 원인을 난민에게 돌려 책임을 피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여기에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이어진 갈등과 에게해 영토 분쟁, 키프로스 대륙붕 자원 개발 다툼도 난민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정치 논리로 인권 문제를 논하는 양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우리는 품위를 훼손하는 그 어떠한 잔혹함을 규탄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유럽의 리더 이탈리아·영국도 난민 문제엔 ‘자국 우선주의’ = 유럽의 리더로 꼽히는 이탈리아와 영국도 난민 문제만큼은 철저하게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6일 이탈리아 정부가 시칠리아 인근 해상에 표류 중이던 난민 구조선 4척 가운데 1척에서 어린이와 여성 등 140명의 하선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비정부기구(NGO)가 운영하는 구조선엔 여전히 1000여 명의 난민이 2주째 발이 묶인 상태다. 이탈리아 정부는 구조선이 등록된 독일과 노르웨이에서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9월 총선을 통해 ‘반이민·반난민’ 구호를 앞세운 극우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를 총리로 배출했다. 멜로니 총리는 난민 구조선을 겨냥해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불법 이주민을 태워 나르는 ‘셔틀버스’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인도적 사안이 아니라면 입항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아프리카 르완다 난민 추방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지난 4월 “불법 이민자로 인한 사회 갈등을 줄이겠다”며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 심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대신 르완다엔 1억2000만 파운드(약 1907억 원)를 지급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국 BBC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난민을 추방하는 행위는 국제규약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유럽인권재판소의 긴급 조처로 존슨 전 총리의 추방 계획은 무산됐다.

리시 수낵 신임 총리도 지난 7일 이집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취임 후 처음 만나 영불해협 불법 이주민 문제를 의제로 꺼내 들었다. 수낵 총리는 “불법 이주 문제를 통제하고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도 했다. 멜로니 총리와도 양자 회담을 열었는데, 영국 총리실은 “불법 이주와 갱단 범죄 등에 대처하기 위한 긍정적인 토론을 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영국 정부는 난민이 치안을 불안하게 하고,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의 논리를 직간접적으로 흘려 여론을 형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들의 움직임은 놀랍지 않다”면서도 “아무도 난민 개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정치적인 담론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새로운 뇌관 우크라이나 난민 = 유럽은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44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유럽으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간 난민까지 합하면 600만∼700만 명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가 “최근 수십 년간 목격한 강제 이주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최고 속도”라고 성명을 냈을 정도다.

문제는 전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침체를 겪는 유럽이 이들을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독일은 올해에만 11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남부 콘스탄츠 등에선 작은 마을의 체육관까지 난민 수용소로 개조되자 주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벨기에는 3만1000개의 공공주택이 이미 동나 3500여 명의 난민이 거리로 내앉았다. 여기에 EU가 우크라이나인에겐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고용 지원과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로 하자 인종차별 논란도 불거졌다.

영국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라며 “유럽의 난민 수용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중동·아프리카 난민 문제 처리 과정에서 보여줬던 유럽의 이기주의와 무능함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다가오는 겨울도 넘어야 할 산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력망을 타격하고 있다”며 “겨울이 되면 더 많은 난민이 유럽에 유입될 텐데 유럽 지도자들의 대책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난민, 어디서든 환영받고 함께 가야”… ‘反이민·난민’ 멜로니 伊총리 겨냥

■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결 노력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은 전 세계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기 사임 가능성이 제기되는 교황은 그 어느 때보다 각종 이슈에 대한 직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교황은 이탈리아 총선을 앞둔 지난 9월 이탈리아 마테라시에서 야외 미사를 집전하며 “이민자들은 어디서든 환영받고, 함께 가야 하며, 지위가 높아지고, 통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민자와 난민이 존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미래를 건설한다는 의지를 새롭게 할 때”라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신의 왕국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영국 가디언은 교황의 이날 발언이 사실상 ‘반이민·반난민’ 공약을 내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형제들(FdI) 대표를 겨냥했다고 평가했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난민 문제를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지난해 12월엔 그리스 레스보스섬 난민촌을 방문했다. 외신들은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교황이 이주민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최근 교황은 난민 문제뿐 아니라 각종 현안에 과감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6일 인구 70%가 이슬람교도인 바레인을 찾아선 마흐사 아미니의 ‘히잡 미착용’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해 “우리는 여성 인권을 위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에서 예민하게 여기는 노동자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어떤 곳에서든 노동은 안전해야 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통신은 2022 카타르월드컵 개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카타르 정부가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85세인 교황은 올해 초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져 휠체어에 의지한 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엔 가톨릭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 중 퇴위’를 선언했던 첼레스티노 5세의 유해가 안치된 이탈리아 라퀼라를 방문해 사실상 조기 사임 뜻을 시사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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