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마음 흩어질라…이태원역 매일 쓸고 닦는 사람들
새벽 5시. 어둠에 잠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시민 추모공간을 비추는 건 켜켜이 쌓인 조화와 추모 편지들 사이에 누군가 켜 놓은 14개의 촛불이었다.
첫차에서 막 내린 시민들은 찬 기운에 몸을 웅크린 채 무심코 이곳을 지나치거나, 한동안 멈춰 선 뒤 자리를 떴다. 지난달 29일 참사 당시 친한 동생들을 잃었다는 한 청년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에 와 “혹여라도 내가 그 친구들을 밟았던 거면 어떡하죠. 먹을 거라도 더 사 줄 걸. 돈이 뭐가 아깝다고…애들이 너무 불쌍해요”라며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참사 그 뒤, 아픈 기억을 내려 둘 곳 없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 추모공간을 쓸고 닦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9일 새벽 만난 60대 남성 ㄱ씨는 참사 다음 날 이태원에 온 뒤 일주일이 넘도록 이곳을 밤새워 지키고 있다. 이름과 나이를 밝히길 꺼린 그는 여행 도중 집과 가까운 이태원에서의 사고 소식을 듣고 아들 생각마저 겹쳐 부랴부랴 서울로 향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들과는 연락이 닿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자가 누웠던 자리를 지킨다. “난 심폐소생술(CPR)도 할 줄 알고 집도 가까우니 여행을 안 갔다면 바로 가서 구조를 도왔을 거예요. 심폐소생술 한 번만 더 하면 살 수 있었을 사람이 많았을 텐데…나라도 더 도왔다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여기(추모공간)를 떠나지 못하겠어요.”
그렇게 자신이 서 있던 곳 주변을 정리하다가 점차 추모공간 전체를 돌보게 된 ㄱ씨는 추모객들이 두고 간 꽃과 간식, 추모 메시지의 양을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시민 봉사자들을 모았다. 현재까지 스무명 남짓한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하지만 이들은 단체 이름도 없고, 서로 통성명도 잘 하지 않는다. 용산구청의 지원도 없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청소와 주변 정리를 하고 갈 뿐이다. 말없이 이들을 독려하며 음료를 내어주는 시민들도 있지만, 때로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어디 지원을 받는다더라’는 등의 수군거림도 감내해야 한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참사) 관련 뉴스도 잘 보려고 하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의 이 기록들을 어떻게 하면 잘 보관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이 제일 걱정이에요.” ㄱ씨는 의연히 말했다.
이날 아침 6시30분께 만난 이아무개(27)씨는 이태원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출근 전 1시간 넘게 빗자루질을 하고 희생자 유족들이 기도하는 작은 책상을 몇 번이나 닦았다. 바람에 떨어진 추모 메모도 한데 모아 다시 자리를 찾아준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이번 참사를 보며 또 한 번 8년 전 그날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출퇴근길 추모공간을 보며 자원봉사를 결심했다. “안산에서 학교를 다녀서 세월호가 좀 더 가깝게 여겨졌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집회에서 노란 리본을 만드는 봉사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이태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거죠. (이 활동으로) 제 감정도 조금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에요.” 이씨는 “청소를 해서 깨끗해지면 유족들이 보기에도 더 나을 것 같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힘든 건 가족일 테니까요”라며 낙엽을 또 한번 쓸었다.
큰 추모 열기 만큼 봉사자들의 손과 발은 바쁘다. 이날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기자도 봉사활동에 참여해 구석구석 떨어진 추모객들의 포스트잇 메모를 줍고, 벌레가 들기 쉬운 음식물은 미리 치웠다. 액체가 흘러 메모와 사진을 손상시킬 수 있는 음료를 따로 정리하고, 영업을 앞둔 가게 앞 추모 메시지를 따로 떼 정리하다 보니 꼬박 낮이 됐다. 봉사자들은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위해 피워준 담배꽁초 하나 버리지 않고 자리를 찾아준다.
2주째 추모공간을 지키는 ㄱ씨와 봉사자들에겐 소망도 생겼다. 희생자의 가족과 친구, 시민들이 이곳에 남긴 기록을 보존하는 일이다. 매일 두 손 가득 떨어진 메모를 줍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메모 하나하나를 개별 촬영해 영상 기록물로 남기는 방안도 생각 중이다. “나이를 들다 보니, 명예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이런 봉사한다고 잘 알리지도 않아요. 흠 잡히지 않고, 묵묵히 내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사람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거잖아요. 추모공간에선 망자만을 생각하고, 기록들을 최대한 보존할 방법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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