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로 해결 말고 사태 해결을 하라[김우재의 플라이룸](33)
2022. 11. 10. 07:37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어느 사회나 그렇듯, 실험실에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실험실의 문제는 여러 층위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실험실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들이다. 실험실은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만 그 본질적인 연구의 기능을 충족한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 가장 긴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은 프로젝트 수행에서 벌어지는 각종 실수와 오류다.
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실험실은 작은 사회다. 이 말은 20명 남짓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조직 안에서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제를 프로젝트의 문제와 독립해 생각하면 할수록 결국 인간의 문제에서 누적된 오류가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실험실 관리의 중요한 분야가 되는 셈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학위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 교수는 책임을 미루는 사람들이었다. 실험이 잘못되고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은 학생의 무능을 탓했다. 상당수의 교수가 대학원생의 학부를 서열화하고, 그것으로 학생을 낙인찍고 차별했다. 본교 출신과 지방대 출신을 차별하는 교수들의 이야기를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은 서울대 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학생의 대학, 성별, 태도 등은 교수가 자신의 책임을 미루는 아주 좋은 핑계가 된다. 한국의 교수들은 교수가 되는 순간,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워버린다.
생각해보면 대학원 시절 교수에게 제대로 된 연구지도를 받아보지 못했다. 연구에 관련된 모든 책임은 학생이 지는 것이었다. 교수는 쓴 열매는 쳐다보지도 않고, 학생이 주는 단 열매만 먹는 사람이었다. 교수가 되고 가장 먼저 다짐한 일은 연구의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철학을 확실히 하는 것이었다. 교수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실험실에서 벌어진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은 교수에게 있다. 실험실을 책임지는 교수는 실험실의 구성원들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건 의무다. 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얼마 전 실험실 초파리 스탁의 오염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해보였다. 초파리 스탁 매니저와 학생 및 관련 연구원 모두와 미팅을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한 말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전 세계 모든 초파리 실험실에서 초파리 스탁의 오염은 일어난다. 분명히 게으른 누군가 오염을 주도했을 것이다. 그 게으른 학생 한두명을 잡아낸다고 해서,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런 게으른 학생의 존재까지 방지할 수 있는 매뉴얼과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 오염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매뉴얼을 더 체계적으로 만들고 신입생들을 제대로 교육하기로 했다.
이 사건의 최종 책임은 교수가 져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이기적인 학생 한명이 초파리를 모두 오염시켰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실험실이 무너지면 그 책임은 교수에게 있는 것이다. 교수가 실험실의 공(功)만 취하고 과(過)는 외면한다면, 그런 실험실은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간이 된다. 누구도 연구의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는 실험실에선, 연구의 윤리 또한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런 곳에서 대학원생 인권이 유린되고, 가짜논문이 출판된다. 교수가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연구윤리 위반의 가장 중요한 축인 셈이다.
실수는 관리하는 것이다
애자일 방법론(경험적 관리기법의 하나) 전문가인 김창준 대표는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산림청은 산불 정책을 예방에 대한 강조에서 관리로 옮겼다. 산불의 특징 때문이다. 산불이 과도하게 예방돼 가연성 물질이 지나치게 축적되면, 큰 규모의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자연상태에서 발생하는 작은 규모의 산불은 큰 규모의 산불 재앙을 방지하는 기능도 있다. 그래서 미국 산림청은 이제 산불을 무조건 예방하자는 주장보다 불을 관리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책을 옮겨가고 있다.
마이클 프레제는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중 실제로 실수가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지 못하게 막는 문화는 ‘실수 관리’라고 말한다. 행동에서 실수로, 그리고 결과로 이어지는 3단계의 프로세스 중에서,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의 경로에, 실수 관리는 실수에서 결과로의 경로에 집중한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건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문가조차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엉망이 아닌 이유는,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실수가 큰 사고로 번지기 전에 빠른 조치를 취하기 때문이다. 실수는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 그것이 실수가 예방이 아닌 관리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실수를 예방하려는 문화에선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실수를 감추고 실수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에선 협력 또한 줄어든다. 실수를 예방하는 조직보다 관리하려는 조직이 더 혁신적이라는 조사도 있다. 실수하지 말라는 조직일수록 새로운 혁신이나 학습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실수를 관리하고 해결하려 하기보다 단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려는 문화가 공무원 조직에 스며들게 되면, 어떤 사고가 터졌을 때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나타난다.
이태원 참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하 여러 고위직 공무원들이 보여준 태도는 한국의 관료사회가 실수 예방 문화에 젖어 있음을 드러낸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모두 책임자의 처벌과 사퇴로만 해결하려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그 이면에 놓여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공무원에게 사고의 책임을 지우려는 문화보다, 그들이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문화가 훨씬 혁신적이다. 이상민 장관은 사고를 수습하고, 행정안전부의 매뉴얼을 전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이후 망언에 대해 사과한 다음 물러나야 한다. 지금 물러나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간편하고 쉬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게 하고, 그 일의 결과를 모두 지켜본 후에 이 망언의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 참사를 해결하고, 한국 공무원 사회에 문제해결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일, 그게 더 혹독한 벌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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