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생존자 "정치인 '유감스럽다'는 말, 듣기 싫습니다"[한판승부]
당시 밀어밀어 아니라, 뒤로뒤로 였다
시스템 붕괴 탓?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다
참사 현장 돕는 시민들, 1류였다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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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김초롱> 안녕하세요.
◇ 박재홍> 우리 진 작가님과 김 소장님 인사 나눠주시고. 안녕하신가라는 인사가.
◆ 진중권> 인사가 좀 그래요.
◇ 박재홍> 드리기 죄송합니다.
◆ 김초롱> 아니요. 되게 좋은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안녕하십니까?
◆ 김초롱> 무사하다는 얘기니까요.
◇ 박재홍> 방송에 직접 나오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셨을 텐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김초롱> 감사합니다.
◇ 박재홍> 당연히 참사 현장에 계셨던 것이고 이제 생존을 하신 건데 지금 어떠신가요? 몸은 괜찮으신 거죠?
◆ 김초롱> 몸은 사실 다친 곳은 하나도 없었고 지금은 생각보다 괜찮은데 또 생각보다 괜찮지 않습니다.
◇ 박재홍> 생각보다 괜찮은데 생각보다 괜찮지 않다.
◆ 김초롱> 그게 딱 제 상태를 말하는 문장인 것 같아요.
◆ 김성회> 글에 보니까 괜찮으시다가도 갑자기 또 힘들어지기도 하고 또 이런 과정들이 좀 반복되시는 것처럼 보이던데 좀 그런 기복이 좀 있으신 거죠?
◆ 김초롱> 그렇죠. 아주 심하다고까지는 표현을 못하겠지만 괜찮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는데 그냥 이유 없이 갑자기 또 다운이 된다거나 이제 자꾸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좋아졌는데 다시 이제 어떤 단어를 본다거나 어떤 생각이 난다거나 이러면 다시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는 그게 계속 반복되는.
◆ 진중권> 쳇바퀴 돌듯이.
◆ 김초롱> 네.
◇ 박재홍> 당시 기억을 떠올리시기 힘드실 수 있는데 말씀하실 수 있는 수준까지 말씀해 주시고 표현하시면 되겠습니다. 10월 29일날 이태원 현장에 저녁에 가셨던 거죠? 몇 시쯤 도착하셨던 겁니까?
◆ 김초롱> 일단 7시 반에 개인적으로 파티가 있었고 그거를 끝내고 이제 메인 스트리트, 세계 문화거리가 사실 이제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기 때문에 이태원에 갔으면 거기를 반드시 한번 가봐야지라는 게 사실 이제 많은 분들이 그랬을 거예요, 친구들이. 그래서 이제 한 파티를 끝내고 한 9시 20분쯤에 그 메인 도로에 도착을 하게 됐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당시 지도가 좀 있으니까요. 그 상황을 설명을 하기 원하시면 저희가 화면에 필요할 때 띄울 텐데요. 당시에 그러면 계시다가 정말 상황이 평상시와 좀 다르다, 좀 인파가 너무 많구나 이런 거를 피부로 느끼셨을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 그걸 느끼셨습니까?
◆ 김초롱> 사실 도착하자마자는 그렇게 심각하다고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원래 이 정도고 원래 많은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나왔던 그 정도였는데 이제 제가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이었고 이제 사고 현장이 가까워졌을 때 그러니까 와이키키라는 술집 근처 그리고 프로스트라는 클럽 근처 그 T자 바로 당도를 할 때쯤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기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 박재홍> 지금 화면으로 나가고 있는데요. 저게 사고 골목이고 그러니까 문화의 거리가 저 거리 위편인 것이고요, 음식 문화의 거리가.
◆ 김초롱> 맞아요. 제가 녹사평역에서 해밀톤 쪽으로 오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 반대 방향은 해밀톤.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돌아서 저희의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마주 가는 방향이었던 거죠. 그래서 거기에 사람들이 모이는 데가 T자형 그 가운데 그런 데였고 1번 출구에서 나온 사람들은 바로 나가면 세로 골목이 있으니까 올라오려는 사람들과 여기서 앞뒤로 만났던 사람들은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내려가려고 하는 약간 이런 흐름이 여러 개가 있었고.
◇ 박재홍> 뭉쳤군요.
◆ 김초롱> 그리고 이제 사람이 빠져나가고 이태원역 근처에는 저런 세로 골목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오고 계속 내려가고 그러니까 이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계속 몰렸던 거죠, 그 근처로.
◇ 박재홍> 그러니까 음식문화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서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또 있었던 것이고 또 전철에서 진입하려고 올라가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게 그냥 함께 만나서 사고가 커졌던.
◆ 김성회> 그런데 또 한편에는 그렇게 많은 인파를 본 게 처음은 아니셨을 거잖아요, 이태원에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까.
◆ 진중권> 이번에 처음 보신 건가요?
◆ 김초롱> 제가 26살, 제가 지금 올해 33살인데 26살부터 매년 갔고 매년 가던 곳을 또 간 거고 사람은 늘 그 정도로 많았어요. 많았는데 이제 아주.
◆ 김성회> 골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중간에 한번 드셨던 건가요?
◆ 김초롱> 사실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풀리겠지. 원래 풀렸으니까요, 조금 버티면. 이렇게 낑낑낑낑 하다가 풀리겠지가 좀 자연스러운.
◆ 김성회> 지하철에서 부딪치는 것처럼.
◆ 김초롱> 그래서 익숙하기도 했어요. 뭐 이 정도는 괜찮지, 뭐. 그러니까 조금만 버티면 사람들이 내려가면 또는 빠지면 아니면 술집으로 들어가면. 왜냐하면 그 근처 술집이 많았기 때문에. 그랬는데 정말 1초 단위로 압박하는 거가 심각해졌고 그때 그사이에 친구를 놓친 거죠. 저희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 박재홍> 김초롱 씨가.
◆ 김성회> 심지어 옆에 있는 친구하고도 같이 걸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군요. 좀 심각했다고 느끼실 수 있었겠네요.
◆ 김초롱> 심지어 그때는 심각하다고도 못 느꼈어요. 그러니까 헉 하다가 발이 땅에 안 닿는 순간이 왔기는 왔는데.
◇ 박재홍> 발이 땅에 안 닿았다?
◆ 김성회> 사람이 많아서요.
◆ 진중권> 끼어버린 거네요.
◆ 김초롱> 앞뒤로. 그런데 좀 숨이 좀 안 쉬어진다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던 것도 맞고. 그런데 그때 제 옆에 있던 분이 와이키키 술집 벽으로 붙어야 살아요. 그래서 사실 본인도 같이 이쪽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분이 이렇게 힘을 해서 밀어줬고 벽으로 붙었고 그때도 이제 사람들이 이쪽으로 제 가슴 쪽으로 밀고 있었기 때문에 숨은 원활한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나았고 벽 난간을 타고 원래 왔던 반대 방향, 녹사평역 쪽으로 가야 된다고 말을 해 줬어요, 앞에 있는 사람이. 그래서 벽을 등에 지고 등 힘으로 이렇게 밀어서 벽을 탄 거예요, 사실은. 그러던 와중에 이제 와이키키 술집 사장님이 원래는 1층 문을 잠그고 계셨는데 나와서 사람들이 하도 난리니까 뭔 일이야 하고 나왔다가 소리를 한번 친 건 맞는데 보고 약간 이상하니까 문을 열어주신 거예요, 이리 들어오라고.
◇ 박재홍> 심각한 상황임을.
◆ 김성회> 일종의 바람을 빼주려고 하셨던 거네요.
◆ 김초롱> 그렇죠. 그래서 아주 작은 1층 입구에 저 포함해서 한 6명 정도가 거기서 잠깐 쉬었고 성인 6명이 좀 빠지니까 한번 약간 정리가 되더라고요.
◆ 진중권> 슥 하고 또.
◆ 김초롱> 그리고 그때 이제 뒤로 뒤로 이런 게 있었고 그래서 이제 골목 끝에 있던 성인 남성분들이 방향을 다 녹사평 쪽으로 확 돌려서 흐름이 그때 한번 바뀌었어요.
◇ 박재홍> 그때 시간이 10시 한 40분.
◆ 김초롱> 10시 30분에서 40분 사이.
◇ 박재홍> 10시 30분에서 40분 사이.
◆ 김초롱> 그리고 이제 제가 아마도 이태원 술집 거기에 잠깐 대피했던 시간은 아마 30분으로 추정이 되는데. 왜냐하면 사장님이 너무 오래 계시면 이게 오히려 또 정체되니까 계속 빼줘야 되니까 잠깐 이렇게 상황을 봤다가 적절한 시기에 타고 나가라고. 그래서 나가야지 하고 핸드폰을 봤는데 그때 딱 10시 40분이었거든요. 그리고서 제가 나갔고.
◆ 김성회> 큰 진전이 있거나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막혔다가 한번 숨 쉬었으니까 나가야지 했던 과정이었던 거네요.
◆ 김초롱> 이제 사람이 좀 이렇게 정리가 되나 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친구를 다시 만나서 놀러가야지, 이런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사실은 끼어 있을 때 시야 확보가 안 됐던 상황이었어요.
◇ 박재홍> 앞에가 안 보이니까요.
◆ 김초롱> 주변에 다 성인 남성분들이었고 키가 컸고 그러니까 발이 떠도 옆에서 발이 떴는지도 사실 옆사람들은 몰랐을 거예요. 키 차이가 워낙 나니까. 그래서 이제 심각성은 전혀 몰랐어요. 그러고서 술집을 빠져 나왔고 이제 친구 찾으러 가야지 하는 그 마음으로 반대 방향으로 간 거죠.
◇ 박재홍> 아까 이제 뒤로 뒤로 말씀 들으셨다고 하셨잖아요. 내려가시던 분들이 더 이상 진입을 못 하니까 뒤로 뒤로 가라고 말을 했던 거고.
◆ 김초롱> 그랬던 것 같아요.
◆ 김초롱> 또 일각에서는 또 뒤에서 내려오시는 분들이 밀어 밀어 외쳤던 분들이 있다. 그분들 때문에 또 사고가 악화된 것 아니냐라는 주장도 있는데 혹시 밀어 밀어는 들으셨어요, 그 음성은?
◆ 김초롱> 전혀 못 들었고요. 뒤로 뒤로였기 때문에 그분들이 한번 등 돌려서 확 흐름을 바꿨던 건 맞아요. 그래서 사실 그런 부분이 좀 답답하기도 했고요.
◇ 박재홍> 뭐가 답답했습니까?
◆ 김성회> 사실 현장의 분위기는 적대적이었다기보다는 서로 흥겨운 분위기였을 거 아니에요?
◆ 김초롱> 아주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아주 낑겨 있는 그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었어도 모를 수 있었고 끼어 있는 사람이 너무 많고 어쨌든 보이는 게 없기 때문에. 그리고 뒤로 가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됐기 때문에 뒤로 가라라고 하나 보다 하고 이렇게 이렇게 그냥 갔던 것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때도 꼼짝없이 막혀 있다가 나오셨지만 상황을 전혀.
◆ 김초롱> 전혀 몰랐어요.
◇ 박재홍> 모르셨던 거고 그러면 정말 뒤에 심상치 않다, 사람들이 쓰러졌다, 혹은 CPR, 인공호흡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건 언제 느끼셨습니까?
◆ 김초롱> 심각하다고 느낀 건 11시 7분에서 10분.
◇ 박재홍> 11시 7분에서 10분.
◆ 김초롱> 와이키키 술집에서 나와서 바로 옆에 새마을회관이라는 데도 똑같이 손님들을 그 가게 안 테라스에다 뭐라 그러지. 대피시켜준다 해야 하나. 그렇게 손님들을.
◇ 박재홍> 보호하고 있었네요.
◆ 김성회> 숨 쉴 공간을 줬었네요.
◆ 김초롱> 바로 옆 공간이어서 1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끼어서 가느라 10분 갔어요, 10분. 그런데 이제 새마을회관을 딱 봤는데 거기에 제 친구가 대피해 있는 거예요.
◇ 박재홍> 손을 놓쳤던 그 친구.
◆ 김초롱> 그 친구가. 그래서 어, 이랬는데 그걸 사장님이 보시고 친구면 들어와서 일단 여기 서고 풀리면 나가라. 그래서 거기서 10시 50분부터 계속 있었던 거죠, 그 새마을회관에서. 그런데 술집이니까 친구들이 안에 원래 있던 손님들은 흥겹게 춤을 추고 놀고 있었고 원래대로. 저희는 대피하는 와중에 이제 그걸 보니까 심각성도 모르고 있었고 놀자고 하니까 주는 술을 받아먹었고 그리고 같이 춤도 췄어요, 아주 흥겹게. 그리고 분장을 한 상태니까 그걸 구경하는 맛이 좀 있더라고요.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그 장면을 보고 너무 웃겨서 찍었던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집에 가서 보니까 11시 7분이었고 그 뒤에 사람이 실려 나가는 게 찍혔더라고요, 제 핸드폰에. 그러고 나서 이제 10분이 넘어갔을 때 언론에 나오는 대로 경찰관, 혼자 소리치는 경찰관을 저도 봤는데.
◆ 김성회> 직접 보셨고요.
◇ 박재홍> 울면서 소리치시는 분,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 김초롱> 멘트가 딱 이랬어요. 앞에서 사람이 깔려 죽었어요. 제발 이러지 말고 말 좀 들어주세요. 통제에 응해 주세요. 그런데 이제 그때 이제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를 하고 먹던 걸 내려놓고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 한 11시 20분, 30분 딱 되니까 그 거리가 통제가 됐고 그때부터는 계속 사람이 실려 나갔죠.
◆ 김성회> 그러면 여전히 좀 전에 대피하셨던 그 가게에 머물고 계셨던 상태예요?
◆ 김초롱> 그 가게에서 새벽 1시까지 계속 묶여 있었어요.
◇ 박재홍> 새벽 1시까지. 골목에 빠져 나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이제 사고 상황을 어느 정도 느끼셨고 다리가 닿지 않는 상황부터 해서 그 상황도 다 겪으시고 CPR하는 상황을 다 보셨는데.
◆ 김초롱> 심각하구나까지는 알았지만 빠져나왔을 때는 더 충격이었죠. 사실은.
◇ 박재홍> 어떤 충격이었습니까?
◆ 김초롱> 길바닥에 사람들이 누워 있는 광경을 평생 볼 수 있을까요? 저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영화 촬영이라고 하면 차라리 믿겠다 하는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저기서 어쨌든 우는 소리도 많이 나고.
◇ 박재홍> 비명소리도 나고.
◆ 김초롱> 그런 것도 나고 막 이러니까 멍했던 것 같아요,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 박재홍> 그 당시 상황을 파악하고 너무 당황하셔서 다른 피해자를 돕지도 못 하셨다며 자책하는 고백도 하셨었는데.
◆ 김초롱> 맞아요.
◇ 박재홍> 그러니까 그 당시에 너무 상황이 위중하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 상황 자체도 너무 좀 힘드셨던 거죠? 누구를 도와야겠다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 김초롱> 무서웠죠.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그리고…
◆ 김성회> 도와달라는 구체적인 요청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옆에서 그런 장면이 펼쳐지는 것은 보여졌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나는 여기서 피해야겠다, 뭔가 큰일이 난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는 이런 글도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김초롱> 맞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있었고 사실은 구체적으로 도움 요청을 받은 것도 맞죠. 쓰러져 있는 분의 친구 분이 어떻게 친구 안 일어나 이런 식이었고 이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달라고 이제 저를 콕 집어서 말한 건 아니지만.
◇ 박재홍>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를.
◆ 김초롱> 그렇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때 어떤 여성분이 누워 있길래 술 많이 취해서 누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것 같고 CPR도 마찬가지로 하실 수 있는 분 있으면 도와주세요 했는데 이제 사실은 눈이 저를 보고 있었던 건 맞기는 맞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실 수 있으면. 그런데 이제 그냥 집에 갔죠.
◆ 김성회>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CPR을 하는 방법을 동영상을 많이 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해 본 적은 없는 상태에서는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가라는 걱정은 되게 당연했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 김초롱> 당연한 걱정이, 당연한 사고가 안 되는 게 재난 이후의 상황입니다. 이성을 잘 찾지를 못 하죠.
◆ 진중권> 현장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모르셨죠?
◆ 김초롱> 아니요. 술집에 갇혀 있을 때 이미 들것에 실려 나가는 숫자가 어림잡아도 한 80은 되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 박재홍> 그래요?
◆ 김초롱> 왜냐하면 천천히 1명이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1초에 세 네 개의 들것 그리고 같이 술 먹던 테이블의 남자친구들은 인원이 모자란다는 말을 듣고 술이 다 깼는지 자기들끼리 나가서 어느샌가 옮기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림잡아 이렇게 봐도 한 80은 되겠다 이렇게 느꼈어요.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였다는 건 알았어요.
◇ 박재홍> 참사 후에 정치권의 반응, 유감스럽다는 말을 들을 때 그렇게 듣기가 싫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어떤 마음이 드셨던 겁니까?
◆ 김초롱> 사과를 할 때 참 유감이야 이렇게 사과하나요? 그렇게 사과해 보신 적 있으세요?
◆ 김성회> 없어요.
◆ 김초롱> 그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유감이라는 말은 직장 상사한테 혼날 때 저는 최선을 다해서 보고서를 썼는데 부장님의 원하는 거에 맞추지 못해서 죄송합니다의 느낌 아닌가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시켜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김성회> 보통 힘 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한테 사과를 하고요.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한테는 유감이라고 말을 하죠.
◆ 김초롱> 그러니까 되게 애매한 사과이고 그러니까 만족스럽지 못한 사과였어요. 그러니까 보통 이제 잘못했으면 무엇이 잘못돼서 이 부분을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무엇이가 있어야 되는데 유감스럽다라는 표현은 그래서 되게 싫더라고요, 그때는.
◇ 박재홍> 대통령도 사과를 했죠. 또 국민들의 마음 아픈 부분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이다,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이런 표현을 했었는데 이 부분에서 또 사과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혹시 대통령 사과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 김초롱> 똑같은데요. 무엇이 그러니까 뭐가요, 약간.
◇ 박재홍> 뭐가 죄송한 마음인지.
◆ 김초롱> 그러니까 죄송한 마음입니다. 마음은 우리 모두 다 죄송하지 않나요? 전 국민이 다 죄송하지 않나요?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데 무엇이 죄송한지가 붙어야 되는 게 사과를 하는 사람의 입장이죠. 그냥 죄송한 마음입니다랑 유감스럽습니다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이제 지금 경찰의 수사로 당시 참사 대응에 경찰의 대응이라든지 소방관의 대응이라든지 또 구청장의 어떤 대처 이런 것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사고 현장을 겪으셨고 지금 이제 뉴스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이후에 나오는 인터뷰도 보실 텐데 가장 좀 충격적이다거나 좀 뭔가 당황스러웠던 것들은 어떤 부분일까요?
◆ 김초롱> 당황스러웠던 것. 그런데 이건 좀 그러니까 여쭤보고 싶은데 컨트롤타워가 없고 시스템이 무너졌고 이런 얘기잖아요, 사실은. 그런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별로인 나라인가요? 진짜로 시스템이 그렇게 붕괴된 나라인가요? 그렇게 후졌다, 이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저는 우리나라 살면서. 아주 자유분방한 사고를 갖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 살면 더 맞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 살기가 안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CCTV가 굉장히 많고 지금도 문자로 112에 신고를 하면 몇 초 만에 답장이 오고 1분 내로 출동을 하는 경찰들이 있고 그게 해결이 되면 해결 그 결과를 문자로 바로바로 알려주는. 저는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붕괴됐나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완벽했던 나라의 시스템은 아니지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되게 탄탄하게 올라갔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위에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예를 들면 솔직히 말해서 이태원에서 노는 것 자체를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재홍> 당일에.
◆ 김초롱> 그리고 원래도요.
◇ 박재홍> 원래도.
◆ 김초롱> 원래도. 노는 건데 뭐. 그렇죠? 노는 거고 파티니까 거기서 얼마나 큰 사고가 일어날지 예상을 못했다는 건 이 놀이문화 그러니까 요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어디를 가는지를 전혀 관심이 없는 건지 어쨌든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놀다가 이런 사고가 난 거니까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베이스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그렇게 크게 났겠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느리게 느릿 느릿 걸어서 가신 거고요. 그런 이상한 사과가 나오는 거고요.
◇ 박재홍> 이상한 사과.
◆ 김초롱> 이상한 사과가 나오는 거고요. 그러니까 어떤 면으로 계속 감수성이 계속 떨어지시는 거죠. 그러니까 시스템에서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붕괴된 시스템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뭔가 제대로 인지를 하고 공감을 하고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었다면 요즘 애들이 여기에 그렇게 열광한대. 그러면 사람이 많이 모이겠지. 여기 좀 신경 써봐 이렇게 됐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났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우리가 더 신경을 못 썼기 때문에 사고가 났구나. 사과를 해야지,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신경 쓰지 못해서 이런 시퀀스가 되게 자연스럽게 나왔겠죠. 그런데 그걸 모르니까 사과 안 하세요라는 기자들 질문에 조사하고 더 밝혀지면. 밝혀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진짜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거든요, 제 생각에는. 진심으로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 박재홍> 사건에 대해서, 사고에 대해서. 당일에도 정보경찰이 이태원에 굉장히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이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정보 보고가 됐다고 하는데 그것도 묵살됐다라는 언론 보도가 있지 않습니까? 그 보도를 들으시면서 더 좀 뭐랄까, 그런 공감 부분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습니다.
◆ 김초롱> 아프죠. 왜냐하면 아까 말했듯이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았다고 믿는 부분도 그런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느꼈던 건 어떤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 멀었다,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라고 하지만 현장에서 본 분들은 다 일류 같은 사람들이었거든요.
◇ 박재홍> 일류 같은 사람들이었다.
◆ 김초롱> 진짜 멋있는 사람 정말 많았어요.
◇ 박재홍> 현장에 멋있는 사람 많았다.
◆ 김초롱> 상인분들도 그렇고요. 11시 이후로 가게 영업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가게 사장님이 있어야 영업이 되잖아요. 없었어요, 사장님이.
◇ 박재홍> 현장에 다시 찾아가셔서 또 한 번 보시고 또 메모까지 남기고 오셨다고 하죠.
◆ 김초롱> 맞아요, 맞아요.
◇ 박재홍> 어떤 말씀을 남기셨습니까?
◆ 김초롱> 잘못했다고 일단 썼고. 미안하다고 썼고요. 그리고 이제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서 다른 방법으로 많이 베풀면서 살겠다, 이렇게 딱 그렇게 적었던 것 같아요.
◇ 박재홍> 김초롱 씨가 왜 미안하실까요? 왜 잘못하셨을까요?
◆ 김초롱> 뭔가 왜 어른들한테 아기들도 혼날 때 이제 어른들이 아이들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으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약간 수그러들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그런 마음이었어요. 사실 이해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컸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그런데 나는 이제 사과를 하고 싶은 대상이 있고. 그러면 이제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내 단점 같은 것들이 괜히 다 잘못이라고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덜렁대는 성격이거든요. 꼼꼼했다면 좀 더 주의를 살폈다면 더 빨리 알았을 텐데. 또는 빨리 알았으면 내가 더 꼼꼼했으면 나도 뭔가 신고나 이런 걸 적극적으로 했거나 이랬을 텐데. 그러니까 나의 모든 단점이 미안함으로 바뀌어서 괜히 죄스럽고. 그리고 내가 대신 산 것 같으니까. 그게 사실 크죠. 내가 대신 산 것 같은.
◆ 김성회> 그런 상처들 많이 받으시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글을 읽으면서 놀랐던 부분 또 어떤 부분에서 안심이 됐던 부분은 상담에 대한 후기였어요. 이만큼 우리나라 시스템도 준비가 되어 있고 이렇게 아픈 사람들 바로바로 이렇게 이 수많은 훌륭한 상담사들이 계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래서 선뜻 전화를 하시거나 접촉을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상담을?
◆ 김초롱> 일단 정말 친한 언니가 이제 제가 신체적인 반응이 올라오는 걸 보고서 뭔가 온다, 이렇게 느꼈고 적극적으로 심리학회 전화번호를 바로 알려줬고 계속 전화하라고 푸시를 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예전에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그 트라우마가 고쳐지지 않으면 되게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약간 자기방어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 김성회> 전화를 했더니 바로바로 뭐가 연결이 되고 상담이 진행됐었나요, 그러면?
◆ 김초롱> 우선 전화 받자마자 받으신 분이 바로 1시간 전화상담을 해 주셨고 제가 쓴 글의 초반에 나오는 조언들 있죠? 그런 건 심리학회에서 1시간 전화상담 동안 다 나온 대답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전화상담으로도 이미 많이 치료가 되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진중권> 주로 뭐라고 하시던가요?
◆ 김초롱> 일단 제가 제일 자책하는 게 그냥 가지 말걸, 거기에. 그리고 그냥 파티 즐기지 말 걸 이런 거였는데 이제 가지 말았어야 되는 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거다, 그게 원래 맞다. 그리고 단순히 놀러 가서 유흥을 즐기다가 죽은 게 아니고 참사를 당한 게 아니고 일상을 살다가 참사가 일어난 거다. 약간 이렇게 말씀해 주셨죠.
◇ 박재홍> 놀다가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를 당한 겁니다. 이 한마디에 많은 치료를 받으셨다.
◆ 김초롱> 완전요.
◇ 박재홍> 시간이 거의 보내드려야 될 시간이 됐어요. 이제 참사를 겪으시고 나서 또 우리 사회에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과 함께.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과 나누고 싶은 말씀 마지막 듣고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 김초롱> 생각보다 국가가 지켜주는 부분이 많아요. 가까이에 전화 한 통이면 구에서 연결되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고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구에서 연결돼 있는 개인 병원도 있고요. 그리고 어제는 제가 계속 이제 다시 자기혐오에 빠져서 이제 그걸 어떻게 중지하면 좋겠냐고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는데 되게 간단하게 분노의 양치질이라도 하세요. 약간 이런. 아니면 레고라도 또는 산책이라도. 몸을 뭐라도 움직이라는, 양치질이라도.
그래서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주신 키트 안정화에 도움 되는 키트가 있는데 거기에 색연필이랑 컬러링북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이제 어쨌든 알고 전문가들이 넣어놓은 키트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 어쨌든 같은 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같이 이렇게 이어져 있어서 보호해 준다라는 마음이 좀 생겨서 뭔가 쉽게 진정되시지 않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언제든지 많은 분들이 많이 이용하셨으면 좋겠다. 그럼 언젠가 좀 웃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좀 듭니다.
◇ 박재홍> 쓰신 글 중에 공감과 연대로 치유를 얻었다라는 제목이 생각나는데 이 공감을 연대로 사회적 트라우마 함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 이태원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첫 번째 진행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제목의 글로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으셨던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 씨였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김초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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